10년간 발품 팔아 상주 암각서 31점 정리한 공무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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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상주문화연구회 회원들이 암각서의 탁본을 뜨고 있다. 오른쪽 네 번째가 김상호씨. [사진 상주문화연구회]

상주문화연구회 회원들이 암각서의 탁본을 뜨고 있다. 오른쪽 네 번째가 김상호씨. [사진 상주문화연구회]

암각서(巖刻書). 바위에 새긴 글씨다. 최근 마무리된 조사에서 경북 상주에 암각서가 31곳이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한 공무원이 10년에 걸쳐 발품을 팔아 거둔 성과다. 업무가 아닌 개인적 관심으로 주말을 할애했다.

주인공은 김상호(57·사진) 상주시 문화융성담당. 김 담당은 본래 건축직이다. 문화재계에서 고건축 지정과 정비 등을 맡으며 문화에 심취했다. 김 담당은 2007년 역사·문화에 관심 있는 시청 동료들과 ‘상주문화연구회’를 결성했다. 지역을 연구하는 향토사학자들이 대부분 연로해져 더 이상 현장을 다닐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워서였다. 그는 회장을 맡았다. 현장조사의 첫 번째 주제로 잡은 것이 암각서였다. 그때부터 김 담당은 토·일요일이면 답사에 나섰다. 우선은 각종 문헌에 등장하는 상주지역 암각서를 확인했다. 둘째 주 토요일엔 회원들도 동행했다.

상주시청 문화융성담당 김상호 씨
동료와 문화연구회 꾸려 답사 하며
암각서 10점, 암각화도 처음 발견
선사시대 인물 암각화 가치 밝혀내
“읍성·산성 등 성곽 흔적 찾을 계획”

“상주에서 돋보이는 암각서는 조선시대 명필 양사언의 글씨로 전해지는 ‘洞天(동천)’입니다. 금강산에도 똑같은 게 있어요.”

그는 “금강산 글씨도 직접 보았다”며 “글자가 너무 커서 탁본을 할때 전지 넉 장이 들어갔다”고 말했다. 문경시와 경계인 화북면 용유리에 있는 암각서 ‘동천’은 길이 9.5m 폭 2.9m 크기의 화강암 바위에 초서(草書)로 쓴 뒤 새겨졌다. 글자 전체가 한 획이다. ‘동천’은 신선이 사는 곳이란 뜻이다. 굽은 획을 펼치면 길이만 9.8m에 이른다. 김 담당은 바위의 크기와 획의 길이 등을 실측했다. 바위가 40도 정도 누워 있어 올라갈 수 있다.

이미 알려진 암각서도 있지만 10여 점은 김 담당이 처음 발견했다. 암각서가 있을 만한 곳을 찾아 동네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고 찾아내 처음 알리게 된 것이다. “이제 상주지역 암각서는 모두 훑었다고 자부합니다.”

그는 조사를 토대로 한 보고서를 지난달 회지에 발표했다. 암각서 탁본 전시회도 열었다. 김 담당은 “한 지역의 암각서 전체를 현장조사로 정리한 건 이번이 처음일 것”이라며 “다른 시·군도 문화원 등이 나서 암각서 등 방치된 문화유산을 조사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암각서와 함께 암각화 9개도 확인했다. 그중 하나가 연초에 공개된 낙동면 물량리 낙동강변의 선사시대 인물 암각화다. 제보를 받고 울산대 반구대암각화유적보존연구소에 의뢰해 가치를 밝혀냈다.

김 담당은 요즘 다시 읍성·산성 등 성(城)의 흔적을 답사하고 있다. “상주는 역사적으로 신라·백제의 경계지역입니다. 기록으로는 29곳이 나와요. 확인하고 지켜야 할 유산입니다.”

송의호 기자 yee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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