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위, 경인민방 새 사업자 선정 유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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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방송위원회가 23일 경인 민방 사업자를 선정하지 못함에 따라 이 지역 1300만 시청자들만 허탈하게 됐다. 이들은 1년 넘게 지상파 지역방송의 시청권을 박탈당했다. 그런데 다시 기약 없는 기다림에 돌입해야 한다. 현 방송위원들의 임기가 5월 9일로 끝나 다음 방송위로 공이 넘어갈 수도 있다. 인천대 반현(신문방송학) 교수는 "이날 결정은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으로, 경기.인천 시민들은 불쾌하지 않을 수 없다"며 "소외감이 더 깊어지기 전에 사업자 선정을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방송계는 소문으로 떠돌았던 '유찰설'이 결과적으로 입증됨에 따라 후유증도 상당할 것으로 예상한다.

◆"상대평가 아니었다"=방송위는 이번 심사가 상대평가가 아닌 절대평가였음을 강조한다. 차선책을 고르는 일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방송위는 교수(9명), 변호사(2명), 회계사(2명), 시민단체 관계자(2명)로 심사위원단을 꾸렸다. 이어 17~22일 5개 컨소시엄의 사업계획서를 검토했다. 심사위원들은 자신이 준 점수만 알 수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점수를 산출한 결과 5개 사업자 모두 기준 점수(1000점 만점에 650점)에 미달했다는 게 방송위의 설명이다.

양휘부 심사위원장(방송위 상임위원)은 "사업 계획의 구체성이 부족하고 실현 여부가 불확실한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방송위는 또 "후속 사업자 선정 과정을 최대한 신속히 진행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현 방송위원들의 임기가 3개월여밖에 남지 않아 공모-사업자 선정까지 이뤄지기는 어렵다는 시각도 많다.

◆사실로 드러난 유찰설=방송위 결정이 외형적으로 큰 하자는 없다. 그러나 학계와 방송계의 시선은 곱지 않다. 경인민방 건과 관련해 방송위는 아무런 대안 없이 방송을 중단시켜 시청자의 권익을 침해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방송 중단 이후에도 상당기간 특별한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소신 없는 결정을 했다는 게 비판론의 핵심이다.

무엇보다 방송계는 지난해 말부터 정치권 등에서 떠돌던 유찰설이 결과적으로 맞아 떨어졌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그 골자는 사업자 선정에 따른 부담을 피하기 위해 공모 자체를 무산시킬 거라는 내용이었다.

시민단체들은 지난해 12월 기자회견까지 열면서 "유찰은 절대로 안 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방송계에선 방송위가 컨소시엄끼리 합종연횡을 유도해 2, 3개로 압축시킬 거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 상태에서 임기 전 최종 사업자를 선정하거나 다음 방송위로 넘길 거라는 논리다.

이에 대해 방송위는 "우리도 심사위원단이 낸 결과를 보고 당혹스러웠다"며 각종 의혹과 소문을 일축했다. 하지만 이번 신청 사업자들의 반발은 거세다. 일부는 새 컨소시엄을 구성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법적 대응 운운하는 업체도 있다. 한 사업자는 이날 성명을 내고 "자본금 규모 등을 볼 때 불과 10점 안팎이 부족해 유찰시켰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이는 방송위가 처음부터 유찰 계획을 가지고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택환 미디어 전문기자, 이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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