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진 합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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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20일 하오8시 대우조선 근로자 2천여명이 13일째 철야농성을 벌이고 있는 경남거제군 대우조선 운동장. 임시로 설치한 천막아래 운집한 농성근로자들이 노사간 협상결과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기본급 1만원인상에다 잔업 2시간짜리 스무대가리(시간계산단위) 못할 경우 불항수당3만원등 모두 4만6천8백80원이 오른 셈입니다.』 대우조선노조위원장 양동생씨 (34)는 목멘소리로 20일 하오5시간에 걸친 회의끝에 회사측과 잠정합의한 기본급인상 및 불황수당지급내용을 설명하고 근로자들의 동의를 구했다.
이어 근로자들의 자유토론이 진행됐다.
맨 처음 연단에 오른 근로자는 대우 어패롤과 대우자동차등 굵직한 노사분규로 진통을 겪은 그룹경영진을 꼬집고 『불황수당은 빛좋은 개살구』라며 일정금액의 수당을 지급해줄것을 요구했다.
「기본급 30%인상」이란 구호가 쓰여진 헬멧을 쓰고 연단에 오른 한 근로자는 『낚싯줄에 걸려든 고기의 촉감이 손에 전달되듯이 근로자들의 농성강도에 따라 회사측의 반응이 달라질것』이라고 강경투쟁을 주장, 열기를 돋웠다.
열사흘동안 철야중 12일간 줄곧 농성에 가담했다는 30대 근로자 부인이 등단했다.
『맨 처음 임금7만원 인상키로 한 요구사항이 시일이 지날수록 5만원·2만원으로 줄어 결국 어린애 과자값도 안되는 인상폭을 제시한 것은 근로자를 무시한 처사입니다.』 약1시간동안 12명의 근로자와 그 가족들이 나섰으나 하나같이 「보잘것없는 인상폭」에 불만의 성토.
회사측 입장도 한번쯤 생각해 보자는 얘기도 나올법 했지만 단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밤이 깊어지자 노조위원장은 별수없이 회사측 타협안을 거부, 장기농성에 들어간다고 선언했다.
노조대표가 합의한 사항이 1시간만에 무효로 돌아가 원점에서 다시 맴도는 노사분규. 서로가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는 양보의 정신과 일단 합의된 약속은 지키는 신의의 룰이 아쉽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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