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별넷’ 명예 추락시켜 놓고…훈장 하나로 달래려는 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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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소위로 임관한 1978년부터 2015년까지 37년간 대한민국 영해 수호를 위해 일했다. 한국민이 해적에 잡혀가자 특공대를 투입해 구출했다. 근무지로 찾아오는 부인에겐 버스를 타라고 늘 강조했다. 해군본부가 있는 충남 계룡대 관사에서도 부인은 수㎞를 걸어서 장을 보러 가야 했다. 관용차를 사적인 용도에 쓸 수 없어서였다. 정부가 보국훈장을 주기로 17일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황기철(60) 제30대 해군참모총장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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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정작 훈장을 받는 사람은 이 소식을 듣고 기뻐하지 않은 듯하다. 황 전 총장의 지인에 따르면 “더 이상 한국 사회에서 사람을 만나기가 편치 않다. 해외에서 공부도 하고 학생들도 가르치면서 살고 싶다”고 했다고 한다. 그는 현재 중국에 머무르고 있다.

통상 각 군의 참모총장은 2년 임기에 맞춰 장성 인사가 있는 4월이나 9월 교체한다. 하지만 황 전 총장은 2015년 2월 군복을 벗었다. 방위산업비리 수사가 한창이던 때였다. 박근혜 대통령이 방산비리는 ‘이적행위’라고 강조한 뒤 검찰은 칼날을 휘둘렀다. 그도 희생됐다. 성능이 떨어지는 선체고정음파탐지기(HMS)를 수상함 구조함인 통영함에 납품하도록 지시한 혐의를 받았다. 결국 전역 후 두 달 만에 검찰에 구속기소됐다. 세월호 사고가 일어났는데도 통영함을 투입할 수 없었던 게 다 그의 탓이라고들 생각했다. 그러나 법원은 1심과 2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지난해 9월 대법원에서도 역시 무죄였다. 무리한 수사였던 셈이다.

박 대통령 “방산비리 이적행위” 뒤
황기철 전 해군총장, 검찰이 기소
대법원 무죄 나자 정부서 보국훈장

재판부는 무죄 선고 이유에 대해 증거가 부족하고, 범행의도가 있다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온갖 비난과 손가락질을 받으며 도망치듯 검찰청사를 나설 때를 생각하면 반전이었다.

옥바라지·송사비 위해 집 담보 대출도

하지만 검찰은 유감 표명 한마디도 없었다. 그 사이 옥바라지와 송사 비용을 대느라 집안도 풍비박산이 났다. 집을 담보로 대출을 내야 했고, 직장을 다니던 딸이 퇴직금을 정산해 돈을 보태야 했다. 황 전 총장은 치욕적인 대우를 받았다. 그를 교도소에서 면회했던 한 지인은 “장관급인 참모총장의 경우 독방을 쓰는 게 일반적인데 황 전 총장은 죄수들 여럿과 함께 지냈다”며 “하루는 얼굴에 멍이 들어 있었다”고 전했다.

황 전 총장은 무죄가 확정된 뒤 외부와의 접촉을 끊었다. 대인기피증도 생겼다고 한다. 특히 자신의 친정인 해군 후배들은 “군에 누가 될 수 있다”며 더 만나지 않았다. 그러곤 중국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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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때 통영함 출동 지시한 의인’으로

해군 관계자는 “황 전 총장이 통영함 문제에서 자유로워져 다행”이라고 말했다. ‘해적’ ‘매국노’라고 손가락질을 하던 여론은 어느새 ‘세월호 때 통영함 출동을 여러 차례 지시했던 의인’으로 바뀌었다. 그는 나중에 “통영함을 출동하라고 지시는 했지만, 세월호 사고 현장에 가보니 이미 통영함으로 구조할 수 있는 상황은 지났다”고 말했다. ‘군인은 명예를 먹고 산다’는 말이 있다. 37년간 쌓아 올린 명예를 단숨에 잃어버린 황 전 총장에겐 보국훈장이 어떤 의미일까. 손상된 군인의 명예는 훈장 하나로 다시 주워 담기 어렵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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