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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5000만 지키자] 아빠도 2년 육아휴직…“회사가 도와주니 애 더 낳고 싶네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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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7부 애 키우기 좋은 일터 <하>
일·가정 균형 기업 직원 달라진 삶

대한민국에서 아이 키우기는 ‘제로섬(한쪽이 득을 보면 반드시 다른 쪽이 손해를 봄) 게임’이다. 가정에 집중하면 직장에는 그만큼 소홀해진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처음엔 수퍼맨처럼 둘 다 잘하려고 애쓰다 절반가량은 포기한다. 이 때문에 15~54세 기혼여성 취업자의 46.4%가 육아 등을 위한 경력 단절 경험이 있다(2016년 일·가정 양립지표). 하지만 저출산·고령화 쓰나미가 목전에 닥치면서 곳곳에서 변화가 시작됐다. 중앙일보·여성가족부가 선정한 '일·가정 균형 우수기업'은 기업 하기에 따라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오후 6시 칼퇴근, 연속 2회 남성육아휴직 등이다. 이런 제도를 누리는 근로자를 만났다.

아빠의 두 번째 육아휴직

아워홈 주임조리사 30대 아빠
요리·건강 챙기는 자상한 아빠 변신
열병 잦았던 큰 아이도 건강해져

육아휴직 중인 아워홈의 최종한씨가 퇴근한 아내를 맞은 뒤 아이들과 저녁 시간을 보내고 있다. [대전=프리랜서 김성태]

육아휴직 중인 아워홈의 최종한씨가 퇴근한 아내를 맞은 뒤 아이들과 저녁 시간을 보내고 있다. [대전=프리랜서 김성태]

박선이(39·여)씨가 현관으로 들어서자 막내 한음(3)이 한달음에 엄마 품에 안긴다. 큰아들 한선(7)과 딸 한율(5)은 두 손을 배꼽에 모으고 “엄마 회사 잘 다녀오셨어요”라고 인사를 건넨다. 박씨는 “아이고 내 새끼”라며 세 아이를 안는다. 남편 최종한(36)씨는 부엌일을 잠시 멈추고 “오늘도 고생했다”며 아내를 맞는다.

지난 6일 오후 7시 대전시 서구에 있는 한 아파트의 저녁 풍경이다. 여느 집과 다를 바 없는 듯하지만 아빠와 아이들이 일터에서 돌아온 엄마를 맞는 게 특이하다. 최씨는 아워홈 주임조리사다. 2015년 5월 첫 번째 육아휴직을 했고, 이어 지난해 5월 두 번째 휴직에 들어갔다. 앞서 2014년 5월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한 아내는 회사일을 하면서 아이 셋을 돌보느라 너무 힘들어했다. 큰 애도 자주 고열에 시달렸다. 고심 끝에 최씨는 육아휴직을 결심했고 회사가 흔쾌히 수용했다. 최씨가 아이들을 챙기자 큰 애의 고열 증세가 사라졌다. 휴직 전엔 잔소리만 많았던 최씨는 이제는 요리를 해주고 숙제도 봐주는 자상한 아빠가 됐다. 아이들이 “복직 안 하면 안 돼요”라며 매달린다고 한다.

오후 6시 칼퇴근하는 엄마

‘워킹맘’인 바비즈코리아 최유리씨는 매일 오후 6시 칼퇴근한다. [사진 최정동 기자]

‘워킹맘’인 바비즈코리아 최유리씨는 매일 오후 6시 칼퇴근한다. [사진 최정동 기자]

최유리(30·여)씨가 3년 전 다니던 무역회사는 육아휴직을 쓸 수 없었다. 결국 만삭까지 다니다 그만뒀다. 1년 4개월가량 아이를 돌보다 재취업을 시도했지만 ‘애 엄마’라는 이유로 여러 회사에서 거절당했다. 그러다 찾은 곳이 출산·육아 용품 전문 브랜드를 만드는 바비즈코리아였다. 애 키울 환경이 좋다는 말을 듣고 지원했는데 정말 그랬다. 오후 6시에 퇴근하거나 연차를 쓸 때 전혀 눈치를 보지 않는다. 최씨는 “특히 매주 수요일 ‘패밀리 데이’엔 5시에 퇴근해 친정에 아이를 데리러 간다”며 “가족 친화적인 문화 덕분에 일과 육아를 병행하면서 오래 회사 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바비즈코리아는 정시 퇴근을 장려하기 위해 노사협의회를 통해 ‘무야근 원칙’을 천명했다. 직원들은 6시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퇴근한다. 지난 5일 퇴근 무렵 이 회사를 찾았다. 23명의 임직원은 오후 6시11분이 되자 제품 촬영 중이던 직원 1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퇴근했다. ‘워킹 맘’을 위해 시간 선택제도 도입했다.

두 딸 손 잡고 출근하는 아빠

중소기업진흥공단 김남정 과장이 직장어린이집에서 두 딸과 함께 책을 보고 있다. [사진 중소기업진흥공단]

중소기업진흥공단 김남정 과장이 직장어린이집에서 두 딸과 함께 책을 보고 있다. [사진 중소기업진흥공단]

중소기업진흥공단(중진공)의 김남정(42) 과장은 매일 하율(6), 하빈(3) 두 딸의 손을 잡고 출근한다. 오전 8시30분쯤 회사 직장어린이집에 데려다 준다. 어린이집을 마치는 시간에도 마음이 편하다. 오후 4시40분쯤 집에 있던 아내가 아이들을 데려간다. 3년 전 공단 본사가 서울 여의도에서 경남 진주로 옮기면서 이런 변화가 생겼다. 원래 어린이집 의무 설치 대상이 아니지만 복지 차원에서 만들었다. 서울에 있을 때는 너무 힘들었다. 어린이집 대기자가 넘쳤고 회사와도 멀어서 걱정을 끼고 살았다. 지금은 마음만 먹으면 아이를 보러 갈 수 있다.

중소기업진흥공단 김남정 과장이 직장어린이집에서 아이들과 어울려 책을 보고 있다. [사진 중소기업진흥공단]

중소기업진흥공단 김남정 과장이 직장어린이집에서 아이들과 어울려 책을 보고 있다. [사진 중소기업진흥공단]

“어린이집이 나에겐 최대의 복지”라고 말한다. 매달 한두 차례 가족이 공연을 볼 수 있게 회사가 지원한다. 매주 수요일은 오후 6시 ‘칼퇴’다. 이 시간엔 컴퓨터 전원도 끈다. 그는 “회사가 도와주니 셋째를 낳고 싶어요. 아내를 설득할 일만 남았죠”라고 말했다.

어린 자녀 있으면 1시간 단축 근무

국민연금공단 과장 30대 엄마
“결혼·출산 해도 불이익 고민 없어
오히려 육아휴직 중에 승진 했죠”

육아휴직 후 승진한 국민연금공단 정영란 과장이 고객과 상담 중이다. [사진 국민연금공단]

육아휴직 후 승진한 국민연금공단 정영란 과장이 고객과 상담 중이다. [사진 국민연금공단]

국민연금공단 홍성지사에 근무하는 정영란(37) 과장은 2015년 7월 육아휴직 중에 승진했다. 연금공단은 육아휴직 승진제한제를 폐지했고 최근 3년 동안 33명이 혜택을 봤다. 정 과장은 “결혼이나 출산을 할 때 보통 승진 때문에 고민을 많이 하는데 우리 회사에선 그런 고민을 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고 말했다. 2014년 12월 출산한 정 과장은 빨리 복직하고 싶어 육아휴직을 5개월만 썼다. 대신 모유 수유를 위해 자녀가 12개월 미만이면 쓸 수 있는 ‘1시간 단축근무’를 했다. 지금은 자녀가 36개월 미만일 경우 월 1회 사용 가능한 육아휴가를 활용한다. 정 과장은 “애 키우기엔 우리 회사가 최고”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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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취재팀=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추인영·서영지·정종훈 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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