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윤씨 인맥 끝도 없이 나오는 화수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한나라당은 22일 청와대를 비롯한 현 정부 인사들의 연루설을 제기하며 윤씨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를 요구했다. 검찰은 윤씨 사건을 놓고 청와대와 야당의 정치적 논란이 불거지자 이날 저녁 서둘러 기자 브리핑을 하고 진화에 나섰다. 검찰은 강 경위의 자살에 대한 경찰의 비난 여론을 의식해 "앞으로 수사는 철저히 인권보호 차원에서 하겠다"며 "생명을 버릴 정도로 심각한 문제는 아닌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어 "23일부터 전직 고검장 출신인 김모 변호사 등 윤씨에게 돈을 건넨 변호사 10여 명을 차례로 소환하겠다"고 밝혔다.

◆ "국가권력의 불법 수사하겠다"=서울중앙지검 박한철 3차장은 "이번 사건에 국가권력의 불법이 어느 정도 연관됐는지 하나하나 수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사는 윤씨의 관련 계좌를 통해 이뤄지고 있지만, 윤씨가 전혀 입을 열지 않고 있어 굉장히 어렵다"고 덧붙였다. 윤씨 사건에 대한 야당의 압박을 의식한 설명이라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검찰의 수사는 이번 주부터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윤씨에게 돈을 준 변호사들에 대한 소환 조사를 통해 이들의 연루 의혹을 밝혀낸다는 것이다.

검찰은 또 최광식 경찰청 차장의 혐의 입증을 위해 윤씨의 측근 인사인 박모 사장을 19일 소환 조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은 박씨에 대한 조사를 통해 최 차장과 관련된 의혹을 상당 부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특히 지난해 11월 윤씨를 체포할 당시 압수한 수첩에 적혀 있는 1000여 명의 유력인사 명단을 토대로 수사한다는 방침이다. 검찰은 이번 사건에 관련된 것으로 알려진 정치권 등 고위층 인사들을 상대로도 수사를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검찰 관계자는 "윤씨의 차명계좌 등에 대해 구체적인 확인작업을 하고 있다"며 "이 중에는 상당히 민감한 부분도 많다"고 설명했다. 박한철 3차장도 "중요한 직위에 있는 사람도 있다. (이분들의) 명예에 손상을 끼칠 수도 있어 조심스럽게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계좌추적을 통한 금품수수 혐의가 명백히 드러나지 않는 한 정치인 등을 소환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검찰의 말은 확실한 물증을 잡기 위한 수사에 집중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 "게이트로 비화될 가능성 커"=윤씨와 돈 거래를 한 의혹이 있는 인사들에 대한 검찰 수사가 계속되면서 "윤씨 인맥이 끝도 없이 나오는 화수분 같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수사 초기 파렴치한 사기꾼이거나 단순한 법조 브로커로 여겨졌던 윤씨가 거물로 확인되면서 비호 인사들이 어디까지 드러날지 주목된다. 지금까지 윤씨와 접촉한 다양한 인사는 한결같이 "만나주지 않으면 험담하고 다녀 시간을 낼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검찰은 지금까지 수표와 계좌추적 등 윤씨의 돈 거래 의혹에 대해 수사를 집중해 왔다.

현재 수표추적은 거의 마무리됐고, 계좌추적도 70%가량 진행됐다고 한다. 하지만 검찰이 '거악'으로 규정한 윤씨의 로비 대상은 아직까지 드러나지 않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윤씨 계좌에서 빠져나간 돈 대부분이 현금이어서 흘러간 곳을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결국 윤씨 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윤씨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이에 검찰은 윤씨의 혐의를 계속 추가 기소하는 압박작전을 쓰고 있다. 검찰은 "재판에서 법정 최고형을 구형하겠다"고 윤씨를 다그치고 있다.

◆ "청부 수사로 꼬리 잡혀"=검찰은 지난해 7월께 윤씨가 경찰에 수사를 청탁하고 이를 이용, 기업체에서 돈을 뜯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내사에 착수했다. 검찰은 이어 강원랜드를 압수수색해 윤씨와 관련된 1000만원 이상 고액 수표 900여 장을 찾아냈다. 검찰은 윤씨가 경찰청 특수수사과에 H건설의 수주 비리 수사를 청탁하고, 동시에 H건설 측으로부터 수사 무마 대가로 9억원을 받은 사실을 확인했다.

검찰은 지난해 12월 9일 윤씨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공갈)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검찰은 이어 수표.계좌추적과 첩보 등을 바탕으로 윤씨가 기업인.경찰 등으로부터 인사 청탁, 급전 대여, 공사 이권 등의 명목으로 돈을 챙긴 혐의를 확인, 세 차례에 걸쳐 추가 기소했다.

장혜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