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대통령을 바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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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지금까지 우리는 다섯분의 대통령을 가져보았다. 보는 이에 따라 생각이 다른 있겠지만 아마 정통성 시비에 시달리지 않은 대통령은 한 두분에 불과하고 또 그 재임기간도 과도기적인 매우 짧은 것이었다고 해도 무방할 듯하다.
정통성시비가 일어나는 것은 집권의 방법과 과정, 달리 말하면 대통령으로 선출되는 방법과 과정이 문제로 남기 때문인데, 이것이 곧 그 대통령의 위상과 권력행사 또는 국정운영의 성향까지를 미리부터 규제해 버리는 일종의 방사능과 같은 작용을 하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체험으로 실감하고 있다.
박정희대통령은 빈곤을 추방하여 「백성」을 갈 살게 하는 것으로 정통성의 결함을 메우려고 했다. 어느 기간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미이라장이가 미이라가 된다는 속담처럼 공업화의 기반조성이 필경 그의 절대권력을 꺾어버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현정권의 경우는 사회정의를 크게 내세웠는데 이에 대한 평가는 아직 이르긴 하지만, 사회정의의 근간이 실상 공정한 경쟁의 보장에 있다고 할 때 이 근간보다는 지엽적인 일에 매달린 면이 없지 않다.
「이런 대통령을 바란다」하면서 왜 이런 얘기를 하는고하니 비단 대통령뿐 아니라 국민이 권력이나 권한을 위임하는 공적인 책임을 지는 자리를 뽑는데는 거기 앉을 사람이 뉘이건간에 뽑는 방법과 과정이 공명정대하고 당당하여야만 우선 신뢰와 존경을 받을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경제가, 또 안전보강문제가 권력의 정당성이나 국정의 합리성을 뒷받침하는 효능을 갖는 시대는 점차 지나가고 있다. 속단하기는 어렵지만 다음 대통령은 부분적인 선거부정 사례 따위도 없는 완벽에 가까운 공명선거에 의해 패자를 포함한 전 국민의 축복속에서 탄생된다고 한다면 막말로 누가 대통령이 되건 상관이 없다는 심정마저 든다.
그 대통령은 우리 모두가 바라는 대통령이 될 기틀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며, 어떤 콤플렉스나 악몽에 시달릴 까닭도 없기에 국민 대다수의 희망과 기대를 받아들여 이를 토대로 바람직한 미래를 설계하고 또 아무런 저의나 책략이 없는 정책을 펴 나갈 수 있겠기 때문이다.
너무 소박한 소리라 할지 모르지만 그렇지가 않다. 바람직한 대통령은 국민이 만들어나가는 것이고, 또 국민은 그 국민의 수준에 알맞는 통치를 받는다라는 말도 그때 비로소 의미를 갖게될 것이다.
다만 한두가지 차원이 낮은 주문이 있다. 권력행사의 핵심은 인사다. 흔히 말하기를 국민은 눈에 없고 청와대만 쳐다보고 일을 한다고 한다. 한 조직이나 단체의 장이 엉뚱하게 낙하산식으로 내러와 차지했을 때의 악영향은 상상보다 훨씬 큰 것이다.
앞으로의 대통령은 법으로 정해진 권한이 어찌되어있건, 아래서 올라오는 사람에게 낙점(조선시대 아래서 올라오는 복수 추천중에 서 어느 하나에 점을 찍는 것) 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 것이 좋다.
다음으로는 웬만한 정책의 결정이나 집행은 아래에 맡겨버리는 것이 좋다. 아무리 벼락치기로 책을 보고 공부를 해도 전문지식이나 전문적 판단력을 갖기는 그리 쉽지가 않다.
「선무당 사람 잡는다」고 탁월한 식견과 훌륭한 동채력, 그리고 와대한 경륜이라는 것에 의존하는 유혹을 스스로 물리쳐야 한다. 바꾸어 말하면 소소한 일에 참견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 두가지만 실행한다면 다른 이러저러한 주문이나 덕목은 자연히 해소되거나 그 안으로 「수렴」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수신교과서처럼 지도자상에 바라며 요구해 왔고 또 요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너무 욕심을 부리지 말고 그저 그분이 대통령으로 앉아 있으니 거북살스럽지도 않고 마음도 놓인다는 느낌정도면 더 바랄 것이 없지 않을까 한다.
왕조시대에는 국가의 원수, 또 통치자가 세습이었기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에)사대부와 사림들, 즉 지식인들이 나서서 왕은 선비의 으뜸이요, 인덕을 실천하는 도의정치를 체현해야 한다고 막무가내로 강요했다.
어찌보면 직선대통령을 뽑지 못한 까닭으로, 국민의 뜻을 대변하는 선비들이 주어진 여건의 제약을 뛰어넘으려고 죽음마저도 무릅썼던 셈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대통령은 물론 왕도 아니고 의제왕도 아니다. 아니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 왕조시대의 왕들이 대개 인사를 아래에 맡기고, 소소한 일에는 간여하지 않으면서 조석으로 신하들, 특히 언관들의 씁쓸한 「말」을 들었다는 사실만은 돌이켜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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