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 유학생의 납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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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유럽여행중 행방불명됐던 재미유학생 이재환군이 평양에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북쪽 방송들은 이군이「제3국을 통해 의거 입북했다」고 발표한 것으로 보도됐다.
그러나 관계당국의 분석이 아니더라도 전후 사정으로 볼때 이군은「강제 납북」된 것이 확실시된다.
미국에서의 이군의 행동이나 서울의 부모에 보낸 편지, 최근 그와 만났던 사람들의 말 등을 종합해 보면 이군은 결코 북한에 자진해서 들어갈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가족들에 의하면 이군은 우리의 정치·사회제도를 예찬했고 조국에 대한 애착도 강했다. 그는 모친의 미국초청을 포함하여 가까운 장래의 계획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입북을 생각하는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일들이다.
더구나 그의 유럽여행은 자의에 의한 것이 아니고 부친의 권고에 따른 것이었다고 한다.
반면에 북한이 그를 납북할 요인은 있다. 이군이 잠적된 오스트리아의 빈은 바로 신상옥·최은희부부가 탈출한 곳이다.
그처럼 그곳의 분위기와 출입국 절차가 납치에 유리할 뿐 아니라 북한의 공관이 있고 그 공관원들은 신·최탈출 책임에 대한보상공로를 세워야할 부담을 안고있었음에 틀림없다. 이런 상황이 그들로 하여금 나이 어리고 그곳 지리에 미숙한 초행의 이군을 납북케한 것으로 생각된다.
평양당국은 이군의 의거 입북을 강조하면서도 육성을 들려주지는 못하고 있다. 그것은 납북의 심증을 더욱 굳혀주고 있다.
이제 남은 가장 확실한 방법은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이군의 자진입북 여부를 확인하는 길이다. 가족과 적십자 당국에 의한 본인의 의사확인 절차에 북한은 솔선해서 나서야 한다.
지금은 남북이 납치와 도발 등 냉전적 행동을 일삼을 때가 아니다. 오히려 긴장을 완화하고 대화로 분단문제를 풀어가야 할 때다.
한편 우리 당국은 이군의 실종경위를 정확히 조사하고 그의 강제 납북에 대해 오스트리아 정부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 어느 국가라도 합법적으로 입국한 자국내의 외국인 안전을 보호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우리도 자생할 일은 있다. 해외여행을 할때 북한의 공관이 있는 곳은 특히 조심해야 한다. 그것은 여러 차례의 경험으로 그 위험이 입증돼 있음에도 아직 경각심이 부족한 편이다.
유학생들의 생활도 보다 엄정해야 한다. 면학과 절제는 그들이 지켜야할 신조요, 철칙이다.
이것은 부모들이 관심을 가지고 규제할 때 더욱 유효하리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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