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노사분규 이렇게 푼다|법고쳐 특권제한 영국병 치유|「대처」집권후 강경대응 |영국-노조 투표거쳐 파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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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영국을 다스리는 것은 국민의 대표인 의회인가 아니면 근로자들의 노조인가』이 도전적 질문은 「대처」영국수상이 79년 집권할 때 국민을 향해 던진 것이었다.
이 한마디의 질문은 영국사회가 노조의 계속된 파업으로 얼마나 고통을 당했었나를 함축적으로 웅변해주고 있다.
당시까지만해도 영국의 노조는 74년 「히든」보수당정부, 79년 「캘러헌」노동당 정부를 무너뜨릴 만큼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대처」 수상이 집권후 이른바 영국병의 원인인 노조에 대한 선전포고를 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대처」 정부는 80, 82, 84년의 세차례에 걸친 고용법개정을 통해 노조가오래 누려온 특권을 크게 제한했다.
노조가 파업을 하려면 사전에 전체 노조원의 투표를 거쳐 찬성을 얻어내야 하고 기업은 노조에 가입하지 않더라도 노동자를 채용할 수 있는 길을 터놓았다. 또 노조가 절차를 밟지않은 노동쟁의를 일으킬 경우 무거운 벌금을 물리는 규정을 신설했다.
이런 배경에서 노조가 힘의 한계를 깨닫게 되는 두차례의 대표적 노동쟁의가 84년 발생했다. 두번 다 노조의 참패로 끝났다.
첫째가 84년1월부터 6개월간 계속된 대외정보수집 및 분석업무를 맡고 있는 정부통신본부(GCHQ) 노사분쟁사건이다.
이사건은 「대처」정부가 국가안보를 이유로 GCHQ노조의 해체를 결정하면서 촉발됐다.
이에대해 노조측은 중앙노조연합 (TUC)의 지원을 받으며 반대투쟁을 벌였지만 「대처」 정부는 파업행위는 않겠으니 노조의 존재는 인정해 달라는 협상안조차 거부하고 노조해체를 관철시켰다.
두번째가 84년3월12일부터 장장 1년간 계속된 영국 최강의 탄광노조의 파업 사건. 18만6천명의 전체 광부중 80%가 파업에 동조했던 이사건은 영국노동운동사상 하나의 분수령을 이룬 사건으로 한때 운수노조·부두노조까지 합세해 영국경제를 위기에까지 몰고갔었다.
74년 「히든」 정부를 무너뜨리는데 성공했던 전국탄광노조 (NUM)의 「아더·스카길」 위원장은 파업투쟁을 계급투쟁으로 규정, 「대처」 보수당정부와의 정면대결로 몰고갔다.
그러나 「대처」 수상은 파업을 『국가내부의 적』으로 몰아붙이고 『노조측은 백지수표를 끊어달라고 하지만절대 응할수 없다』고 강경하게 버티었다. 더 나아가 파업이 전체 노조원의 투표를 거치지 않았다하여 불법이라고 규정했다.
파업이 장기화되자 탄광노조내의 온건파들이 노조원들의 생계가 위협을 받고있다는 현실문제를 내걸고 직장으로 돌아가자는 노조원 설득 캠페인을 펴기 시작했다.
특히 「실버·버치(은자작나무)라는 별명을 가진 34세의 한 광부는 친구 2명과 함께 전국 파업탄광을 돌아다니며「일자리로 돌아가기」 운동을 펼쳤다. 이들은 TV와 신문을 통해 탄광노조 파업이 좌파세력에 끌려가고 있다고 폭로하는가 하면 탄광노조 집행부를 상대로 파업의 불법성을 들어 법원에 고소까지 했다.
이들 3명은 사실상 목숨을 걸고 반란선봉에 나서 파업노조원들로부터 폭행을 당하기까지 했다.
결국 파업이탈자들이 계속 속출해 파업 막바지인 85년2월말에는 9만4천명이 일자리로 돌아갔고 3월5일 파업은 노조의 참패로 막을 내렸다.
이 파업으로 영국경제는 1%의 경제성장률 감소를 가져왔고 약50억파운드 (6조원)의 경제적 손실을 입었다.
이같은 예는 최악의 경우이지만 영국의 노동분쟁은 통상 고용주단체와 노조간에 타협과 합의과정을 거쳐 조정된다.
특정 기업주와 근로자간의 직접 대결보다는 산업군별로 사용자 단체와 노조간에 분쟁조정을 위한 노사합동위원회가 상설되어 있어 이를 통해 해결하는 것이 통상적이다.
노사합동위원회는 전국합동위·지역합동위·업체별합동위등 여러가지 형태를 갖고 있다.
합동위에서는 노동쟁의 해결뿐 아니라 제품생산계획, 투자, 근로자복지·훈련·안전문제까지 다루어 노사간의 이해는 물론 근로자의 경영참여 기회까지 확대하고있다.
이러한 1차적 분쟁해결기구와는 별도로 노사문제에 관한 최종적 법정기구로서 전국중재위원회(ACAS)가 설치되어 있다.
노사문제에 전문지식과 경험을 가진 9명의 중량급인사로 구성되는 ACAS는 공기업이나 사기업을 막론하고 중재요청이 있으면 1인 전담중재인을 임명하거나 중재위원회를 구성해 분쟁을 다룬다.
전국중재위는 이밖에도 노사관계·고용정책에 관해 정부·경영자·노조 및 근로자개인등 당사자에게 충고와 자문을 함으로써 분규예방에도 조역한다.
이런 자율적 과정이 모두 실패하거나 해결전망이 어두울때는 정부가 개입, 고용성(노동부) 이 특별사문법정을 설치하거나 분쟁조사위를 구성해 처리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로정부개입이 발동되는 일은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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