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 규제 "풀 건 풀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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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부산 동서대에서 열린 부산시교육청 중등교사 논술지도자 과정 연수에 참가한 교사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강의를 듣고 있다. 연수에 참가한 화명고 정순진 교사는 "대입 논술시험 문제를 보면서 너무 어려워 당황했다"며 "학교 현장에서 올바른 논술 교육을 하기 위해 방학을 이용해 논술지도자 과정에 참가했다"고 말했다. 부산=송봉근 기자

2006학년도 주요 대학 정시논술 가채점 결과는 이번 논술 문제가 얼마나 난해했는지 그대로 보여줬다. 특히 연세대는 실제 응시생의 절반 정도가 제시문에서 논술 주제조차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대학 측이 요구하는 수준의 답안을 쓴 학생이 20%가 채 안 된 것으로 전해졌다. 다른 대학도 대학 측이 스스로 "상당히 변별력이 있었다"고 평가할 정도로 응시생 간 성적 차가 벌어졌다.

대학들은 수능과 학생부의 변별력이 신통치 않아 논술을 어렵게 낼 수밖에 없다고 해명한다. 고교 간의 학력 차이가 있는데도 이를 무시해야 하고, 수능이 자격시험으로 바뀌는 상황에서는 논술로라도 수학능력을 구분해야 한다는 논리다. 전문가들은 "진정한 의미의 논술이 정착되려면 정부가 입시 규제를 풀 건 풀고, 공교육에서 담당해야 할 건 담당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 가채점 결과=연세대 김도형 출제위원장은 19일 "수험생들의 반 정도만 제시문 네 개의 공통주제어가 '불안'이란 걸 찾아냈다"며 "무작위로 스무 장을 뽑았을 때 3, 4명 정도가 좋은 답안"이라고 말했다. 고려대 이재훈 출제위원장도 "기대했던 수준의 변별력이 나왔다"고 말했다. 서강대의 가채점 결과도 마찬가지다.

연세대 박진배 입학관리처장은 "수능과 학생부만으론 (학생을 선발하기에) 변별력이 충분치 않다"며 "논술과 면접을 포함할 때 비로소 변별력이 커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른 대학 입학처장은 "사실상 올해부터 고교 간 차이를 고려할 수 없게 됐다"며 "그 뒤 대학들이 부쩍 논술에 신경을 쓰고 있다"고 전했다. 현행 대학입시 제도 아래서 '우수 학생'을 제대로 고르기 위해서는 논술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대학가에선 수능과 학생부가 등급제가 되는 2008학년 입시 이후 논술의 중요성이 더욱 커질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 3불 정책은 비교육적인 입시제도=이렇듯 논술이 어려워지는 게 '3불 제도(기여입학.본고사.고교등급제 금지)' 등 입시 규제 탓이라고 보는 전문가가 많다. 결국 정부가 풀어야 한다는 뜻이다. 장호완 서울대 교수협의회장은 "인재를 양성하고 고교의 지적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선 평등화된 교육 시스템이어선 곤란하다"며 "우수한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을 구분해서 교육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는 "3불 정책을 풀어야지 지금처럼 가선 인재 육성에 반대되는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닌가 우려된다"고 했다.

대학이 좀 더 수험생을 배려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서울대 백순근 교수는 "대학마다 논술고사 실시 이유와 평가 기준을 구체적으로 제시, 수험생과 학부모가 오해하거나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도록 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함께하는 교육시민모임' 김정명신 대표는 "대학들이 굳이 논술고사를 실시한다면 교과서 중심으로 지문을 출제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 "학교 교육으로도 논술 지도가 가능"=박진배 처장은 "논술에 대비할 목적으로 책을 읽고 공부하는 것은 교육적으로 옳지 않다"고 말했다. "정상적인 학교 생활과 독서활동으로 논술 실력을 올려야 한다"고 박 처장은 밝혔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교육이 변해야 한다. 암기나 단편적 지식을 전달하는 기존 학교 수업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토론식 수업도 이뤄져야 한다고들 말한다. 발 빠르게 대응책을 마련한 학교도 있다. 광주 금호고에선 ▶1학년 때 서울대가 추천한 양서 98권을 중심으로 읽고▶2학년 1학기 때 1500자▶2학기 때 2000자▶3학년 때 3000자씩 쓰는 논술 교육을 하고 있다. 논술 교육에 수학.과학 교사까지 참여한다. 이 학교 박남식 교감은 "16일 치러진 서울대 논술고사에 10명이 응시했는데 '학교 논술지도가 도움이 됐다'고 했다"며 "우리 교사들은 학교 교육으로 논술지도가 가능하다는 소신이 있다"고 말했다.

부산 개금고는 특정 주제로 강의하는 '테마 강좌'를 운영한다. 이 학교 서진관 교사는 "수능 이후에는 하루에 하나의 테마를 중심으로 친한 친구들끼리 소그룹별 토론을 하고 논술 개요를 공동으로 짜 보고 글쓰기도 하는 등의 수업을 진행했다"며 "이를 통해 어느 정도 논술에 대비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고정애.한애란 기자 <ockham@joongang.co.kr>
사진=송봉근 기자 <bks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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