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미국-법적 절차따라 협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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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워싱턴∥한남규특파원】지난68년부터 10년동안 미국에서 스트라이크로 인한 작업중단 일수를 근로자 1천명단위로 계산할 경우 5백45일로 통계가 잡혀있다.
이탈리아의 1천5백47일, 캐나다 9백10일, 아일랜드7백2일에 이어 세계4위에 해당된다.
그러나 미국파업은 그 과정이 대부분 평화적이고 끝난후에도 근무시간외 작업등으로 생산량을 회복, 유럽에서처럼 국가경제까지 흔들리는 경우는 드문게 특징이다.
지난달 27일 디트로이트시에서 세계최대 자동차메이커인 제너럴 모터즈사와 전국자동차노조 (UAW)가 오는 9월14일의 노동계약만료에 대비, 차분하게 새로운 계약협상에 들어갔다.
세계최대기업 GM사와 산별 노조총연맹 (AFL-CIO) 산하의 최대노조단체인 UAW간의 협상이라는 점에서 미 노사교섭의 표본이라고도 할수있는데 양측은 미자동차산업위축을 우려하여 이번엔 스트라이크없이 협상을 성공시킬것을 미리 다짐하고 나섰다.
미국의 노사협상은 오랜 전통으로 굳어진 법적절차를 철저히 따른다. 우선 전국노동관계법에 보장된 단체교섭의 진행을 위해 전국노동관계위원회 주관아래 근로자들은 비밀투표로 협상대표를 선발한다. 대부분의 경우 협상과 계약서 작성에 능숙한 고참노조간부가 대표로 뽑힌다.
협상대표는 사용자측에 대해 요구조건을 제시하지만 내용과 절차가 엄격한 격식과 자제를 갖추는게 특징이다.
요구내용은 현행 계약에 수정을 가하는 형식이 대부분이지 느닷없는 요구조건이 튀어나오는 일은 흔하지 않다. 회담장소도 호텔같은 중립적인 곳이 선택된다.
첫회의에서는 관례적으로 근로자의 제안이 제시되고 사용주측 제안은 두번째 별도회담에서 제시된다.
양측이 아무리 자제하더라도 흔히 팽팽한 대립끝에 협상은 스트라이크로 발전 되기도 한다. 협상과정에서 근로자대표가 파업에 들어가겠다고 위협하는 것은 보통 있을수 있는 일이지만 실제로 이를 실천에 옮기는 것은 협상대표로서는 매우 어려운 결정이다.
양보의 굴욕을 버리고 파업을 선택했을 경우 그 결과는 대체로 얻는것보다 잃는게 많다는 경험을 잘알고 있기 때문이다.
스트라이크에 돌입하면 시위현장 (피키트 라인)에서 폭력사태가 발생할지도 모르고 경찰·법원이 쟁의에 개입하게될 가능성도 있다.
그럴경우 변호사 경비와 같은 법적비용등 노조측이 신경을 써야하는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스트라이크도 엄격한 법적절차에 따르게 돼있고 위반하면 민·형사대상이 되는것은 물론이다. 요구조건을 명시한 피키트는 공장정문앞 등으로 제한되며 아무데서나 시위를 하면 구속된다.
노조대표부는 파업의 경우 근로자에 대한 지원책도 준비해야한다. 스트라이크에 들어가면 급료는 물론 때로는 의료보험혜택도 중지되기 때문이다.
이에 대비해 많은 노조는 「파업지원기금」 을 미리 준비해 놓는다. 노조원의 정규회비로 적립된다. 그러나 대부분 이 지원은 전국노조에서 지급되는데 지역노조 파업의 타당성을 인정하여 전국노조가 허가를 해준 경우에만 해당된다.
그나마 정규급료의 20∼30%수준에 불과하다.
일부 주에서는 주정부가 스트라이크의 경우에도 실업보험금이나 일반구호금 등을 지급한다. 이런것들이 여의치않을때 노조간부는 사설기관· 민간기업에 구호를 요청해야 하는 어려움을 감수해야 한다.
노조대표가 사용주를 상대로 계약을 일단 성립시키더라도 이는 잠정적이다. 전체근로자회의에서 거부될수 있기 때문이다. 8∼12%정도가 거부되는 것으로 통계가 잡혀있다.
약이 확정되어도 실제시행과정에서 준수되지 않는경우도 발생한다. 이경우 근로자는 탄원을 제기한다.
이같은 단체교섭계약의 위반행위는 법적으로 스트라이크대상이 안된다. 보통 변호사들로 구성되는 조정기구에 회부돼 판정을 받는다. 미조정연합회 또는 연방중재 조정국 등이 그것이다.
미국의 경우 한가지 특기할 사실은 미근로자의 대부분이 노조에 가입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전국 1백74개 노조의 회원은 2천2백만명으로 전노동인구의 20%에 지나지 않는다. 개인별 고용계약과 갖가지 보상정책을 수단으로 고용주가 비노조화 추세를 유지하고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성향이 강한 미국에서는 유럽에서만큼 노조활동이 활발하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노사분규가 큰 충돌없이 해결되고 있는것은 오랜 산업화 과정을 겪으면서 과격한 마찰을 피할수 있는 메커니즘을 마련해놓고 그 메커니즘의 공정성을 노사가 다같이 믿을수있게 해주는 전통이 확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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