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짚고 헤엄치는 구글·페북 광고, EU 칼 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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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유럽연합(EU)이 구글과 페이스북 등 미국 정보기술(IT) 기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며 ‘인터넷 주권’지키기에 나섰다. 유럽에서 온라인 광고 노출을 까다롭게 만들어 온라인 광고로 먹고 사는 기업들이 적지않은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10일(현지시간) 인터넷 이용자 추적 행위를 제한하는 사생활보호법안을 발표했다. 그동안 IT기업들은 사람들이 웹브라우저에서 검색을 하거나 웹사이트를 방문할 때 만들어지는 ‘쿠키(Cookie, 인터넷 이용자의 기록)’를 수집해 수많은 맞춤형 광고를 제공해 왔다. A씨가 구글 검색창에 일본 여행을 검색해 봤다면 이 기록을 토대로 A씨가 e메일을 사용할 때 화면에 일본 여행 상품 광고를 띄워 소비를 유도하는 식이다.

인터넷 방문기록 추적 방지법 발표
맞춤형 광고에 본인 동의 의무화
어기면 매출의 4%까지 벌금 부과

그러나 법안은 쿠키를 수집해 맞춤형 광고를 노출하려면 이용자 동의를 확실히 받아야 한다는 규정을 넣었다. 이에 따라 앞으로 IT기업들은 이용자가 회원가입을 할 때 개인정보보호 정책에 동의를 했더라도 이용자에게 쿠키를 수집해도 되는지 별도로 물어봐야 한다. 이용자가 추적을 거부하면 일반 온라인 광고는 계속 노출되지만 맞춤형 광고 노출은 중단된다. 만일 기업이 법을 위반하면 그 회사가 전 세계에서 올리는 매출의 최대 4%를 벌금으로 부과받을 수 있다. EU측은 법적으로 쿠키 수집 동의가 업체별 약관 동의보다 우선한다고 강조했다. 에스토니아 총리를 지낸 안드루스 안시프 EU집행위원회 디지털 정책 위원장은 “이번 정책이 유럽의 디지털 단일 시장에 대한 신뢰를 높이고 프라이버시를 보장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맞춤형 광고는 IT기업의 핵심 수익원이다. 구글은 지메일(Gmail)과 크롬, 페이스북은 왓츠앱, 마이크로소프트는 익스플로러, 애플은 아이메시지 등의 브라우저와 e메일·메신저·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이용자의 관심사에 따라 다양한 채널에 광고를 제공하고 해당 광고에 높은 프리미엄을 청구하고 있다. 로이터는 “광고수익 의존도가 높은 기업들이 규제 강화로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실제 구글의 경우 매출의 90%이상이 광고에서 발생한다. 구글의 2015년 매출은 745억 달러(약 89조원)인데 이 중 광고수입은 674억 달러다. 법안은 EU의회와 회원국의 논의를 거쳐 수정될 수 있지만 집행위는 “사생활 보호와 정보 추적에 대한 법적 투명성이 필요하다”며 원안을 밀어붙이겠다는 입장이다.

업계와 주요 외신들은 이번 ‘쿠키수집 금지법’을 디지털 단일 시장을 강조하고 있는 EU의 IT주권 지키기로 해석하고 있다. 미국의 IT기업들이 PC는 물론 모바일까지 장악해 인터넷 주도권을 빼앗기고 있다는 것이 EU회원국들의 판단이다. 단적으로 구글의 유럽시장 검색엔진 점유율은 90%로 미국(85%)보다 높다. 이미 EU는 지난해 구글이 휴대전화 제조사에 구글의 검색 애플리케이션만을 설치하도록 유도하는 등 반독점법을 위반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혐의가 최종 결정되면 구글은 연간 매출의 10%, 지난해 기준으로 무려 8조원의 벌금을 낼 수도 있다. 앞서 애플은 아일랜드를 탈세 기지로 삼았다는 혐의로 EU법원으로부터 13억 달러를 추징받았고 이에 대해 항소중이다. EU는 페이스북에 대해서도 2014년 왓츠앱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허위 정보를 제공했다며 과징금을 부과했다. 미국의 IT매체 와이어드는 “EU가 갈수록 모든 이슈에 대해 미국 기업을 단속하고 있다”고 했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EU의 움직임에 대해 “미국 기업에 대한 통제권을 가지려는 의도”라고 비판했다.

유럽이 연초부터 규제의 고삐를 죄는 가운데 뉴욕타임스(NYT)는 “5억 명 규모의 유럽시장이 올 한해 IT공룡들에게 축복이자 저주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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