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측이 10일 헌법재판소에 '세월호 7시간' 행적을 밝히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례를 언급하며 '관저 집무'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박 대통령 측은 "노 전 대통령도 2004년 6월 이라크 무장단체에 인질로 잡힌 '김선일씨 납치사건' 당시 관저에 머물면서 전화와 서면으로 보고를 받았다"며 "'관저정치'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노 전 대통령은 자주 정치인이나 지인을 관저에 불러 대소사를 논의했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이완영 새누리당 의원이 제기했던 것 그대로다.
이 의원은 지난달 5일 국회 최순실 국조특위 전체회의에서 한광옥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대통령의 관저 집무에 대해 질문하면서 노 전 대통령의 사례를 꺼냈다.
박 대통령 측이 비교 대상으로 삼은 '김선일 피랍사건'은 지난 2004년 6월 21일에 일어난 일이다.
이라크 무장저항단체가 김선일씨를 납치해 24시간 내에 이라크 내 한국군이 철수하지 않을 경우 피살하겠다고 협박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정부가 소식을 접한 것은 21일 월요일 새벽 4시40분, 카타르 주재 한국 대사관이 보낸 긴급전문을 통해서다.
언론보도와 정부 발표를 종합하면 노 대통령이 첫 보고를 받은 건 오전 6시쯤이었다.
출근하기 전이어서 노 대통령은 관저에 있었다.
평일 업무시간이 시작된 뒤에 발생한 세월호 참사와 단순 비교하기엔 설득력이 떨어진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건 2014년 4월 16일 수요일 아침 8시58분이었다.
9시쯤에는 TV 자막과 속보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박 대통령 측은 헌재에 제출한 자료를 통해 "오전 10시에 첫 보고를 서면으로 받았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관저에 있었다.
"공식 일정이 없었고, 대통령의 컨디션이 좋지 않았기 때문."
박 대통령 측이 헌재에서 밝힌 이유다.
보고를 받은 뒤 두 사람의 거처도 차이가 있다.
노 전 대통령은 상황 보고를 받은 뒤 집무실로 출근해 오전 10시쯤 수석·보좌관회의를 소집해 김씨 구출에 전력투구할 것을 지시했다.
박 대통령이 관저를 나온 건 하루 일과가 끝나가는 오후 5시15분이었다.
세월호 선체의 대부분이 이미 바다에 잠긴 뒤였다.
한편 헌재 재판부는 "답변서에 따르면 오전 10시에 보고를 받아서 (사고 사실을) 안 것처럼 되어 있는데, 9시 이전부터 언론보도가 있었던 것을 피청구인(대통령)이 확인하지 않았는지 분명히 해달라"며 자료 보완을 요구했다.
▶박 대통령 측에서 헌재에 제출한 '세월호 7시간' 관련 행적
유길용 기자 yu.gilyo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