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치솟는 인플레로 "휘청"|외채동결등 "극약"써도 연1천% 예상|근로자 임금묶어 노조선 파업 으름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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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브라질 리오데자네이로 국제공항 출국장 면세점에서는 자국통화인 크루사도화가 통하지 않는다. 달러 외는 사절이다.
그러니 모든 물건에 달러표시 가격표만 붙어 있을 뿐이다.
이 때문에 세계 3대 미항의 하나인 리오데자네이로를 찾았던 외국인들은 출국시 적잖은 당혹감과 함께 금전적 손해를 보곤한다.
쓰고남은 현지화를 털어버리기 위해 그만큼의 물건을 챙겨들고 카운터에서 크루사도화를 내밀었다가는 여지없이 『US달러나 크레디트카드로』 라는 점원의 안내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럴수가 있느냐』고 항의라도 할라치면 『뒤에 다른 손님이 밀려 있으니 빨리 계산해 달라』는 점잖은 충고가 잇따를 뿐이다.
브라질의 어려운 외환사정을 웬만큼 아는 외국인들이라 할지라도 출국장이 분명 자기나라 일진대 그 안에서 자기나라 화폐가 통용되지 않는다는 데는 아연해 질수 밖에 없다.
이처럼 자기나라를 찾았던 외국인들로부터 달러를 철저히 털어내고 있는게 브라질이지만 시중 슈퍼마킷에선 불가사의하게도 달러화가 통하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환율변동이 극심하고 은행에 가서 환전하는 일이 귀찮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니 꼭 슈퍼마킷을 이용해야할 일이었으면 은행이나 환전상을 통해 현지화인 크루사도화를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환전을 하는 가장 수월하고도 좋은 방법은 가까운 중국음식점을 통하는 일이다.
브라질에선 공공연하게 암달러상 역할을 하고있는 중국음식점을 이용할 경우 최고의 환율을 적용받을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중국음식점에서는 공정환율보다 10%정도 높은 환율에 달러를 환전해주고 있다. 그것도 바꾸어주는 입장에서 고마와하는 형편이고 보면 현지화가 필요한 외국인 입장에선 인심쓰고 많은 돈을 받을수 있어 꿩먹고 알먹고다.
이 같은 이상한 환전방식에 대해 리오데자네이로시 코파카바나 해변에서 중국음식점을 경영하고 있는 화교 진명념씨 (52) 는 『크루사도화의 대미달러환율이 하룻밤 자고 나면 2∼3%씩 오르기 때문에 10%정도 높게 평가, 환전해 주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며칠만 지나면 본전을 챙기는 것은 물론 자신도 상당한 환차익을 올릴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중국인들이 달러를 높은 환율에도 기꺼이 환전해 주는 이유는 다른데 있다고 현지인들은 귀띔한다. 경제가 불안하니 만약 외국으로 옮겨갈 일이라도 생길 경우에 미리 대비하고 있다는 얘기다.
중국인들의 달러선호는 브라질 경제의 심각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례에 지나지 않는다.
83년 이후 연간 2백%가 넘는 상상을 초월하는 인플레와 세계제일의 외채국이라는 불명예가 브라질경제를 기반부터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고 있는것이다.
1천73억 달러에 이르는 외채는 브라질경제의 앞날에 커다란 먹구름을 드리우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이다.
1년에 갚아야할 외채이자만 1백20억 달러에 달해 도저히 이를 상환할수 없게되자 브라질은 지난2월20일 6백80억 달러에 이르는 외국은행차관의 이자를 90일 유예하겠다고 일방적인 선언을 했었다.
이어 지난1일에는 오는 연말까지 갚아야할 10억5천만 달러에 달하는 선진채권국그룹 (파리그룹)으로부터의 공공차관에 대해서도 상환을 중지하겠다고 발표, 채권은행들을 또다시 놀라게 하고있다.
브라질정부는 지난 1월 파리그룹과 협의, 85∼86년 외채상환액을 6년간 지불연장하는데 합의했으나 87년 하반기 상환액의 지불연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었다. 「페레이라」 브라질재무장관은 지난1일의 조치에 대해 『채권국에 대한 도전은 아니고 다만 외환보유액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고 밝혔지만 채권은행들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충격을 주고있다.
브라질은 지난2월 이자지불유예선언과 함께 주요식품가격안정을 위한 정부보조금삭감 및 정부기관의 예산절약등 경제긴축계획을 동시에 발표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물가는 고삐가 잡히지 않고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어 그대로 방치할 경우 연간1천%가 넘는 인플레를 면할 수 없게 됐다. 사정이 이렇게되자 「사르니」 대통령은 지난달 중순 「뉴 크루사도 플랜」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이 뉴 크루사도 플랜은 지난해 임금 및 물가동결에 주안점을 두고 실시됐다가 실패한 크루사도 플랜에 이은 자구책으로 선진국채권은행들로부터 상당한 지지를 받고있다.
우선 획기적인 정부예산절감을 위해 연간 20억달러에 달하는 밀보조금을 일체 중단하고 미달러화에 대해 크루사도화를 공식적으로 10.52% 평가절하했다. 이렇게 됐으니 수출이 늘어날 것이고 이에 따라 올해안에 최소 80억달러의 무역수지흑자를 바라볼수 있게돼 채권은행들로서는 한시름 덜게된 것이다.
브라질경제가 엉망이 돼 빌러준 돈을 고스란히 떼이느니 보다는 경제가 순조롭게 풀려 조금씩이라도 돈을 되돌려 받아야 하는 채권은행들로서는 속이 탈 노릇이지만 튜크루사도 플랜에 한가닥 기대를 걸 수밖엔 없는 셈이다.
남미국가들이 대부분 그런것과 마찬가지로 브라질도 엄청난 인플레에 시달리고 있다.
물가를 잡겠다고 칼을 빼들고 나섰던 지난해에도 2백25%라는 물가상승률을 기록했고 올들어서만도 지난4월에 23.1%, 5월에 27.6%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각각 나타냈다.
「사르니」 대통령과 「페레이라」 재무장관의 호언대로 물가가 잡히기만 하면 브라질경제는 가장 당면한 발등의 불 하나를 끄게되겠지만 이것도 꼭 희망적인 것만은 아니다.
근로자들이 임금동결에 대해 강력한 반발을 하고있기 때문이다. 노조측은 이 같은 뉴 그루사도 플랜이 강행될 경우 파업도 불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있다.
그동안 만성적인 악성인플레에 시달려온 근로자들 입장에서 보면 이번 계획이 또다시 실패할 경우 물가는 잡히지 않은채 임금만 묶여 생계에 커다란 위협을 받게될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뉴 크루사도 플랜에 회생여부를 걸고있는 브라질경제는 결국 근로자들 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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