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희기자의뒤적뒤적] 달달 외우기만 잘하는 아이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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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나는 비빔밥 인간을 만들고 싶다
박태견 지음
뷰스

우리 주변에 한창 '그들만의 전쟁'을 치르는 분들이 있습니다. 대입 수험생들과 그 가족들입니다. 대학입시가 진행형이기 때문입니다. 논술, 구술 등을 치르느라 수험생과 그 가족들은 맘 졸이고, 땀 빼고, 눈치 보느라 정신이 없답니다.

발등의 불은 아니지만 이번엔 중.고등학생과 그 부모들을 위한 책을 소개합니다. 2008학년도 입시부터 서울대가 본격 도입한다는 '통합형 논술'에 관한 안내서입니다. 미리 분명히 해둘 것은 '통합형 논술'에 대한 만능열쇠를 제공하는 내용은 아닙니다. 이해를 돕는 책입니다.

우선 통합형 논술을 왜 도입하려 하는지, 이를 주도한 정운찬 서울대 총장의 입을 빌려 설명합니다. 정 총장은 반쪽이를 양산하는 우리 교육에 대한 처방으로 통합형 구술을 구상했답니다. 그에 따르면 '칸막이 교과'를 달달 외우는 식으로 공부한 우리 학생들은 정말 문제랍니다. 예컨대 이과 출신은 첨단 컴퓨터 프로그램이 성서해석학이란 인문학적 뿌리에서 지적 자양분을 얻었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문과 출신은 모든 인류가 먹고 남을 식량이 생산되는데도 왜 지구촌의 수억 명이 배를 곯는지, 우리 경제는 나날이 발전하는데 빈부 양극화는 심해지는지에 대한 성찰이 부족합니다. 요즘 중.고생들은 부모 세대보다 몇 배나 더 시험공부에 시달리면서도 사물을 종합적으로 보는 능력은 퇴화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외우는 능력'만 기형적으로 발달해서랍니다.

정 총장은 우리 학부모들의 교육 열기가 교육열 아닌 입시열이라 꼬집습니다. 21세기는 글로벌 무대에서 창의력을 경쟁하는 시기라면서 통합적 사고를 갖춘 창의적 인간,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유목민'이 시대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그러려면 '어린 왕자형' 논술이 나와선 안 된다고 합니다. 소설 '어린 왕자'에서 왕자와 여우의 대화를 소개하며 인간 소외에 관해 쓰라 했더니 수험생 10명 중 7명이 특정 시를 인용한 답안을 썼다나요? 이런 학원형 논술 답안은 한계가 있다는 겁니다.

흑백논리 대신 역지사지할 줄 알고, 인문과학과 자연과학 모두 이해하는 사람, 엘리트주의를 거부하는 엘리트, 사익보다 공익을 우선하는 공동체 의식과 윤리 의식을 갖춘 건강한 시민을 기르는 것이 통합형 논술의 목적이랍니다.

이 책 1부의 정 총장 '진단'을 읽으면 통합형 논술에 관한 궁금증은 상당 부분 풀립니다. 문제는 수험생이나 학부모들로선 뾰족한 해결책을 찾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이 책 2부에서 통합형 논술 맛보기가 제시되지만 갈증은 여전합니다. 우리 사회 모두가 나서 고민할 일인가 합니다.

김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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