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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리포트] 오늘도 나의 검색창엔, #맛집#퇴근하고싶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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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샵’이라고 해야 하나, 우물 정(井) 자라 부를까. 페이스북·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을 처음 본 누군가는 고민했을 터다. ‘#’ 뒤에 잔뜩 붙어 있는 단어들. 문장도 아닌 것이, ‘젊은 아재’ 눈에는 영 껄끄러운데 보다 보니 이게 참 신통하다. ‘#’ 뒤에 지극히 함축된 글자를 나열하는 것만으로 SNS 속 2030들은 자유자재로 의사소통을 한다. 자신의 일상을 전하고 관심사를 공유한다. 해시태그(Hashtags) 이야기다.

해시태그로 소통하는 2030
특정단어에 # 달아 SNS 올리면
비슷한 게시물 쉽게 검색할 수 있어
#백수#취준생…취업 고단함 나누고
#먹방#스테이크…맛집 정보 공유
해시태그 휩쓸고 가면 ‘핫플레이스’
기업들도 마케팅에 발빠르게 활용

해시태그는 영어로 ‘해시(hash)’라 부르는 ‘#’ 기호를 써서 게시물을 ‘묶는다(tag)’는 의미다. 본래 용도는 SNS 게시물을 올릴 때 ‘#[특정단어]’ 형식의 글을 함께 올려 나중에 비슷한 게시물들을 쉽게 검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표시다. 해시태그 사용자가 늘어나면서 ‘#’ 뒤에는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메시지들이 함께 묶이게 됐다. 그래서 해시태그에는 SNS 사용자들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이 담겨 있다.

희(喜)

먹음직스러운 음식 사진을 올려놓고 글은 ‘#먹스타그램’으로 시작한다. ‘#맛스타그램#먹방#망원동#스테이크#연어#맛집’ 등이 그 뒤를 잇는다. SNS 해시태그 검색창에 ‘먹스타그램’을 검색하면 이런 글들이 14만 개 넘게 나온다. 여기엔 “내가 오늘 먹은 거야, 부럽지?” “여긴 망원동 OO골목에 있는 식당이야” “스테이크와 연어 메뉴가 특히 맛있어” 등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인스타그램에 주로 음식 사진을 올리는 한예림(30)씨는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과 즐거웠던 시간을 기억하기 위해 음식 사진을 올린다”며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만큼 기쁜 순간이 어딨겠나”고 말했다.

옛말에 기쁜 일은 나누면 두 배가 된다고 했다. SNS에는 이처럼 자신의 기쁨을 두 배로 나누고 싶어 하는 인증샷들로 가득하다. 먹스타그램 외에도 ‘#데이트’(448만9000여 건/페이스북·인스타그램에서 검색된 해당 해시태그 수), ‘#행복’(378만9000여 건), ‘#남친선물’(19만6000여 건), ‘#여자친구선물’(19만6000여 건), ‘#자랑스타그램’(16만4000여 건) 등의 해시태그를 검색하면 나와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사람들의 ‘기쁜 소식’(이라 쓰고 ‘자기 자랑’이라고 읽는다)을 접할 수 있다. 그 안에는 각자의 개성과 취향 등을 인정받고 싶어 하는 마음도 담겨 있다. 그래서 이들을 ‘ㅇㅈ(인정)세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 기자의 해시태그 #맛집#나도데려가#희희낙락#나빼고#다잘살아

로(怒)

기쁜 날이 있으면 화나는 날도 있는 법. 특히 지난해에는 유독 화낼 일이 많았다. 지난해 11월 19일 친구들과 함께 광화문광장에서 촛불을 든 김민주(24)씨. 꽃 스티커가 가득한 경찰차벽 앞에서 찍은 인증샷을 SNS에 올렸다. ‘#촛불집회#이게나라냐#꽃스티커#박근혜하야’

지난해 한국의 SNS 민심은 분노할 때가 많았다. 해시태그에도 이들의 분노가 서려 있었다. 5월 발생한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여성들 사이에서 ‘#살아남았다’(1400여 건)는 해시태그가 유행이었다. 그날, 그 장소에 있지 않아 살아남았을 뿐 누구든 여성이란 이유로 생명을 위협받을 수 있다는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최순실(61)씨의 국정 농단 사건 이후 전 국민의 분노는 한층 더 격앙됐다. 지난해 10월부터 올해까지 지속되는 주말 촛불집회 때면 2030 네티즌들의 촛불 인증샷이 속속 올라왔다. 인증샷에는 ‘#촛불집회’(19만3000여 건), ‘#박근혜하야’(16만1500여 건), ‘#이게나라냐’(10만여 건) 등의 해시태그가 따라붙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의 7시간이 이슈가 되면서 세월호 사건을 기억하자는 의미로 2년 넘게 쓰인 ‘#잊지않겠습니다’(12만여 건) 해시태그도 다시 떠올랐다. 이처럼 해시태그는 민심을 등에 업은 채 살아 움직였다.

● 기자의 해시태그 #화난다그램#아직도#진실은#침몰하지않는다

애(哀)

경북 구미에서 9개월 된 아들 휘겸이를 키우는 안혜정(31)씨는 직장을 그만두고 육아에만 전념하고 있다. 전업주부 ‘휘겸맘’으로 살아가는 건 녹록지 않았다. 안씨는 ‘독박 육아’ 스트레스로 생긴 우울함을 달래려 SNS를 시작했다. 하다 보니 자신과 비슷한 해시태그를 단 아기 엄마들과 고민을 나누게 됐다. 대구에 사는 조은별(27)씨도 17개월 된 딸 지윤이의 사진을 SNS에 매일 올린다. 조씨는 “해시태그를 타고 찾아온 분들이 지윤이 사진을 보고 ‘예쁘다’는 댓글을 달아주면 그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고 했다.

‘#슬픔’(26만6000여 건)은 나누면 반이 된다. 같은 상황에 처한 이들과 공감하고 위로를 주고받는 것, 해시태그로도 가능하다. 전업주부들은 ‘#맘스타그램’(344만5400여 건), ‘#독박육아’(40만6000여 건) 등의 해시태그로 소통하고 공감한다. 세계인의 걱정거리인 ‘탈모’가 해시태그로 달린 글은 11만 건이 넘는다(참고로 탈모의 영어 표현인 ‘#alopecia’가 쓰인 글은 20만 건 이상이다).

한국 직장인들의 영원한 숙제인 ‘#야근’(37만2000여 건)도 있다. ‘#퇴근하고싶다’(15만6000여 건)도 단짝처럼 붙는다. 그것조차 부러운 ‘#백수’(19만4000여 건), ‘#취준생’(16만여 건)은 운다.

● 기자의 해시태그 #오늘도#마감이다#내눈은#동태눈#내눈네눈#똑같아

락(樂)

줄줄이 달린 해시태그들을 보다 보면 종종 ‘#소통’(3430만2000여 건), ‘#맞팔’(3779만6000여 건) 등이 발견된다. ‘#f4f’(1억5000만여 건)는 또 무슨 뜻일까. 전투기 이름인가 했더니 ‘follow for follow’의 줄임말이란다. 바로 ‘네가 나를 팔로어(친구 신청)하면, 나도 너를 팔로어하겠다’는 의미다. SNS 내에서 해시태그로 친구를 구하고, 그 활동 자체를 즐기는 사람들이다.

패션 관련 사업을 준비 중인 류모(29)씨가 그렇다. 그의 SNS 게시물 해시태그에는 앞서 언급된 것들뿐 아니라 ‘#인친(인터넷친구)’(1020여만 건), ‘#팔로우’(1640여만 건) 등이 달린다. 류씨는 “해시태그를 통해 다양한 사람과 소통을 하다 보면 내 관심사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며 “특히 사업을 할 때 홍보 수단으로 활용하기에 좋다”고 말했다.

기업들은 해시태그 마케팅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요즘 해시태그가 한 번 휩쓸고 간 곳은 바로 ‘핫 플레이스’가 된다. 해시태그로 놀고, 위로받고, 뭉치는 20~30대 ‘해시태거’들은 그렇게 세를 확장해 나가고 있다.

● 기자의 해시태그 #저랑도#친구해요#그게바로#해시태그의길

홍상지 기자 hong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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