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소설 1년에 한 편씩 쓴 고교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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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원래 심사위원이 이러면 안 되는 건데요. 작품을 보고 놀라서 전화했어요. 부디 아이 잘 키우세요."

2000년 'EBS 드라마 극본 공모'의 심사를 맡았던 작가 박진숙씨는 당시 초등학교 5년생이던 황성현(16.경기도 고양시 저동고 1년)군의 부모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당시 황군은 1년 전 완성했던 첫 소설 '비밀의 화원'을 이 방송국 공모에 출품해 본선에 진출한 상태였다. 극본 형식을 갖추지 않아 아쉽게 상을 타진 못했지만 심사위원인 박씨는 "내 맘 같아선 1등상을 주고 싶다"고 할 만큼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후 황군은 본격적으로 습작에 들어가 1년에 한 편 꼴로 장편소설을 완성했다. 중.단편까지 치면 지금까지 10편이 넘는 작품을 썼다. 대부분 추리소설이다.

"어릴 때부터 애거사 크리스티와 존 그리셤 등의 작품을 빼놓지 않고 거의 다 읽었어요. 극적인 반전이 주는 매력에 푹 빠졌거든요."

또래 친구들이 컴퓨터 게임과 TV 만화에 열을 올릴 동안에 황군은 추리소설에 빠져 산 셈이다. 고등학교에 들어간 뒤로 공부 때문에 글 쓸 시간이 줄어든 게 가장 큰 불만이란다. 그래도 늦은 밤과 새벽을 틈타 요즘도 하루 1~2시간은 소설 창작에 몰두한다. 황군의 어머니 김혜경(46)씨는 "하도 어릴 때부터 몸에 밴 일이라 갑자기 공부하라고 말릴 수도 없다"고 했다.

최근 황군은 중학교 2학년 때 썼던 추리소설 '듀바리 부인의 초상화'(양서원)를 책으로 펴냈다. 1930년대 영국의 한 경매장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소재로 했다. 소설 속 역사적.문화적 사실을 제대로 묘사하기 위해 숱하게 인터넷을 뒤지고 백과사전을 들췄다고 했다.

"친구들은 인터넷 소설이라면 모를까 추리소설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그래도 제 책을 읽고 좋아해 줄 독자가 조금은 있지 않을까요?"

황군은 내친 김에 완성해 놓은 나머지 소설도 올해 중 출간할 계획이란다.

교내 오케스트라에서 첼로를 연주하고 그림 솜씨도 수준급인 황군의 장래 희망은 정신과 의사다. 왜 소설가가 아니냐고 물었더니 "좋아하는 일은 취미로 남겨둬야지 생계 수단으로 쓰고 싶진 않다"는 어른스러운 대답을 했다.

황군은 변호사인 황규범(50)씨의 외아들로 학교 성적도 상위권이다. 담임 교사인 정성식씨는 "성현이는 공부와 학교 생활도 열심히 하는 모범생"이라고 말했다.

글.사진=신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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