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북한식 경제개발 모델 구상할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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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카메라에 잡힌 김 위원장 일행

중국을 극비 방문 중인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13일 오전 광저우 바이톈어 호텔에 도착한 모습으로, 오전 9시쯤(현지시간) 호텔 로비에서 대기하고 있던 일본 N-TV가 이를 촬영해 방영했다. 사진은 이를 보도한 SBS의 화면을 촬영한 것이며, N-TV는 사진상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 인물 중 한 명이 김정일이 틀림없다고 주장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태운 것으로 보이는 차량이 13일 오전 중국 광저우 바이톈어白天鵝) 호텔을 빠져나와 도로를 달리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중국 남부 광둥(廣東)지역을 돌아보는 큰 틀이 드러나고 있다.

김 위원장은 광둥성 성도(省都)인 광저우(廣州)를 중심으로 인근 경제특구인 주하이(珠海).선전(深?) 등을 둘러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변 공업도시와 최근 건설된 고속도로.항만 등도 참관할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들은 "이번 시찰은 중국에서 가장 비약적으로 발전한 지역을 직접 찾아 그 실상을 피부로 느끼는 체험학습"이라고 말한다. 더욱이 광저우에서 50여 대의 차량이 한꺼번에 움직였음을 감안할 때 김 위원장의 수행단 규모는 최소 100명에 이른다. 경제관료인 박봉주 내각 총리와 노두철 부총리, 박남기 노동당 중앙위 부장, 김광린 국가계획위원장, 임경만 무역상 등 당.정.군에 포진한 핵심 측근들이 대거 포함됐다는 게 정설이다. 이들이 중국에서 가장 부유한 광둥성을 보면서 북한식 발전 모델을 고민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주하이와 선전 방문의 의미는 각각 다르다.

우선 주하이 방문과 관련, 상하이의 한 기업 관계자는 "주하이는 중국이 환경보전과 경제발전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모델로 만들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며 "중국 측이 김 위원장에게 방문을 권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러나 광저우의 한 소식통은 지난해 마카오에서 철수한 조광무역 등 북한 상사들이 최근 주하이로 옮겨왔다는 점을 거론한다.

조광무역은 지난해 9월 미국 당국으로부터 마카오에서 북한의 불법 자금을 취급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았다. 마카오 은행들은 미국의 압력으로 4600만 달러 규모의 돈이 들어 있는 북한 비밀 계좌를 동결했다. 이 돈은 김 위원장의 비자금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은 주하이 행보를 통해 중국 측에 자신의 동결된 비자금을 풀라는 메시지를 간접적으로 보냈다는 것이다.

선전은 더 큰 의미가 있다. 김 위원장은 1983년 첫 방중 당시 선전을 방문해 중국의 개혁.개방이 이뤄지는 초기 현장을 시찰했다. 김 위원장은 북한으로 돌아온 뒤 선전 방문 소감을 "중국식 사회주의는 타락했다"는 말로 표현했다. 뒷날 이를 전해 들은 중국의 최고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이 격노해 북.중 관계가 한동안 얼어붙은 적이 있었다. 김 위원장 역시 줄곧 중국식 개혁에 거부감을 감추지 않았다.

김 위원장이 중국식 개혁.개방을 처음으로 공식 평가한 것은 2000년 방중 당시였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의 이번 선전 방문은 중국식 개발 모델을 높게 평가함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가 묵을 것으로 예상되는 선전 우저우(五洲)호텔은 19일까지 국제회의를 이유로 일반 투숙객을 받지 않고 있다. "다른 지역보다 선전에서 더 길게 머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김 위원장이 베이징으로 가는 날짜는 18일 전후로 예상된다. 중국 지도자들과의 만찬.회담 등의 일정을 감안하면 김 위원장의 방중 기간이 열흘을 넘길 수도 있다. 이 자리에서 김 위원장은 북한의 경제개발을 위해 중국 측의 전폭적인 지원을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교착 상태에 빠진 6자회담과 미국의 대북 압박 해소 방안도 주된 의제가 될 것이다.

상하이.광저우=진세근.최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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