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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타계한 신영복 교수의 미발표 원고 7편 공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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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월15일 타계한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 그의 75년 인생은 한국 현대사의 명암을 대변했다.권혁재 사진전문기자

2016년 1월15일 타계한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 그의 75년 인생은 한국 현대사의 명암을 대변했다.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지난해 1월 15일 타계한 신영복 선생의 미발표 원고 일곱 편이 공개됐다. 출판사 돌베개가 선생의 타계 1주기를 맞아 펴낸 유고집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에 미발표 원고 일곱 편이 육필 원고 사진과 함께 실렸다. ‘가을’‘성(聖)의 개념’ 등 선생이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되기 전 청년 시절 쓴 글들이다. 원고는 A4 용지보다 약간 긴 갱지에 씌여졌으며, 모두 선생의 유품 속에서 발견됐다.

귀뚜라미.

귀뚜라미.

유월보름밤에.

유월보름밤에.

‘인간의 자유, 그것의 충족은 양(量)의 증대(增大)에 달린 게 아니다. 부자유도 적응에 의하여 자유로워질 수 있다. 세칭, 미화되고 있는 자유의 근본도 그것이 진정한 자유가 아니다. 자유의 내용은 평등과 적응이다. 평등은 적응의 필요조건이며 적응은 자유의 충분조건이다’(‘귀뚜라미’ 중), ‘너에게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네게 일러두고 싶은 말이 있기 때문이다. 더욱 고귀한 자연은, 더욱 자비로운 신은 냉연(冷然)한 인간의 현실 속에 있다는 것이다. 인간으로서의 위치에 내려서기를 주저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비록 그 위치가 보잘것없는 것이라 하더라도 서슴지 않고 여기에 내려서지 않는 한 우리는 인간으로서의 패자(敗者)를 면할 도리가 없다’(‘산에 있는 일주(逸周)에게’ 중) 등 선생이 남긴 젊은 날의 습작 속에는 깊은 사유의 흔적이 생생하다.

『냇물아 …』에는 미발표 원고 외에 선생이 생전에 신문과 잡지 등에 기고한 글과 강연록 중 책으로 묶이지 않은 글들도 실려있다. 또 선생이 20년 20일의 수형 생활을 마치고 출소한 이듬해인 1989년부터 타계 직전인 2015년까지 나눈 대담 중 10편을 가려 엮은 『손잡고 더불어』도 함께 출간됐다.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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