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 에이스脈 잇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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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지땀을 흘리며 힘을 모으는 폼이 영락없는 '천하장사'다. 단단한 허리, 굵은 허벅지만 봐도 그렇다. 1m84㎝에 1백㎏이 넘는 거구. 체중이 실린 공은 시속 1백50㎞를 넘나들며 '슈~욱'하는 바람소리를 낸다. 실제로는 빠르게 회전하는 공이 공기와 마찰하면서 나는 소리다. 그러나 타자에게는 뱀이 먹이를 잡으려고 다가오는 듯한 기분 나쁜 소리처럼 들린다. 마찰음이 클수록 공끝은 홈플레이트 근처에서 크게 흔들린다. 타자로서는 타점을 맞히기가 힘들다. 바로 김진우(20.기아)가 던지는 공이다.

김진우의 장점은 타고난 덩치와 힘에서 나온다. 지난해 기아가 계약금 7억원이라는 엄청난 돈을 투자한 데는 김진우의 뛰어난 하드웨어'가 한몫 했다.

역대 최고 투수로 평가받는 선동열(전 해태)처럼 대형 선수이면서도 유연성을 갖춰 부상 위험 없이 오래 뛸 수 있을 것이란 판단도 함께였다.

김진우의 장사 체질은 올해 세 차례 완투로 이어졌다. 5일 현재 8개 구단 전체 투수 중 가장 많다. 물론 선발-중간-마무리로 분업체계가 분명해진 현대 야구에서 무리한 완투로 피로가 쌓이면 오히려 다음 경기에 지장을 준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김진우의 힘은 예외인 듯싶다. 지난 6월 29일 청주 한화전을 시작으로 최근 다섯 경기 연속 퀄리티스타트(선발 6이닝 이상 3실점 이하)를 기록 중이다. 그 중 두 차례나 완봉승이 끼여 있다.

최근에는 투구수를 효율적으로 조절하는 지능적인 피칭도 돋보인다. 가장 최근 경기였던 3일 광주 두산전에서 9이닝 동안 2안타.무실점으로 막는 완봉승(시즌 6승)을 거뒀다. 투구수는 1백5개에 불과했다. 이닝당 11.7개의 투구로 타자 한 명을 아웃시키기 위해 약 3.9개의 공을 던진 셈이다. 맞혀 잡는 투구가 많았다는 방증이다. 마운드에서 여유가 생겼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유는 두 가지 정도가 꼽힌다. 우선 직구와 파워 커브로 단조로웠던 구질에 체인지업까지 장착, 다양해졌다. 시즌 초반부터 조계현 투수코치가 전담하다시피 김진우를 맡아 키운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시즌 초 자성(自省)의 시간을 가졌던 것도 김진우를 자라게 했다. 김진우는 두 차례 폭행사건에 연루, 4월 하순부터 한 달간 2군에서 근신처분을 받았다. 철부지나 다름없던 김진우도 프로선수의 책임감.자부심.명예 같은 '존재의 무거움'을 알게 됐다.

말 그대로 '아픈 만큼 성숙해진' 김진우가 한 걸음씩 대형 정통파 투수의 길을 열어가고 있다.

김종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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