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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기자들의 2016 추천작①] '빅쇼트' '아노말리사' 자객섭은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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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올해의 영화

장성란 기자

장성란 기자

‘올해 최고의 영화’를 가리는 기준은 여러 가지다. 하지만 해마다 최고의 영화로 기억되는 작품은, 살아온 배경도 다르고 취향도 제각각인 우리 각자가 사랑한 영화 아닐까. 극장을 나서는 순간부터 집으로 돌아가는 골목길까지 좀처럼 여운이 사라지지 않는, 그날 이후에도 머리와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되새김질하는 영화들 말이다. 연말을 맞아 magazine M 기자들이 흥행 성적이나 수상 결과에 상관없이 자신에게 남다른 의미로 다가왔던 영화를 세 편씩 꼽았다. 2016년 국내 개봉 영화를 기준으로, 철저하게 기자 6인의 개인적 취향과 감성을 반영해 골랐다. 이 글이 magazine M 독자들과 나누는 진심 어린 대화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제, 기자들이 묻는다. 당신이 꼽는 ‘올해 최고의 영화’는 무엇인가.

빅 쇼트 | 애덤 맥케이 감독 | 1월 21일 개봉

‘빅 쇼트’를 보는 내내 거센 파도에 온몸을 맡긴 기분이었다. ‘와…, 영화를 이렇게 만들 수도 있구나!’ 말 그대로 경외감에 압도된 130분이랄까. 지금까지 2008년 미국 월가에서 전 세계로 퍼져 나간 금융 위기를 다룬 극영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마진콜:24시간, 조작된 진실’(2011, J C 챈더 감독) ‘라스트 홈’(4월 7일 개봉, 라민 바흐러니 감독) 등이 있었다. 관객이 인물에 감정 이입하는, 전통적 극영화의 이야기 구조를 충실히 따른 영화들이었다. ‘빅 쇼트’는 다르다. 물론 월가에서 일하는 몇몇 주인공을 구심점으로 삼는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뿐 아니라 전체 사태와 구조, 그로 인한 여파를 보게 한다. 그것은 연출의 파격이 있기에 가능했다. 극 중간중간 유명 인사가 등장해 금융 위기의 복잡한 원인과 현상을 설명하고, 내레이터로 변신한 등장인물이 관객을 쳐다보며 사태의 심각성을 경고한다. 그 모든 것이 새로운 데다 영리하고 강렬하고 유쾌하고 세련되고 박자감 넘친다. 끝내 현실을 바꾸기 위해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을 먹게 한다. 이런 영화를 이전에 본 적 있었던가. 영화가 끝난 후 애덤 맥케이 감독의 머릿속을 들여다보고 싶어 손톱을 물어뜯었다.

1895년 뤼미에르 형제가 영화를 발명한 뒤로, 100년 넘게 해마다 수많은 영화가 쏟아지고 있다. 좋은 영화, 그중에서도 ‘새로운’ 영화를 보는 것은 각별하고도 각별한 경험이다. 영화는 오늘도 새로워지고 있다. 2016년은 내가 영화를 사랑하는 이유를 다시 한 번 짜릿하게 확인한 해로 기억될 것이다. ‘빅 쇼트’ 덕분에.

아노말리사 | 찰리 카우프먼·듀크 존슨 감독 | 3월 30일 개봉

 ‘아노말리사’의 장르를 단순히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이라 부르는 것이 미안할 정도다. 올해 실사영화와 애니메이션을 통틀어 이토록 관능적이고 진실한 섹스신을 보여 준 작품은 없었다. 이 영화는 턱 조각을 움직이며 말하던 인형이 어느새 피와 살로 살아 숨 쉬는 사람이 되어, 우리 모두의 사랑과 진실을 움켜쥐는 마법을 부린다. 감독이자 각본가인 찰리 카우프먼이 부리는 마법의 끝은 어디일까.

자객 섭은낭 | 허우샤오시엔 감독 | 2월 4일 개봉

‘그 영화만의 공기가 있다’는 표현은 이런 작품에 바치는 것이다. ‘자객 섭은낭’은 영화 전체가 뿌연 안개 속을 꿈꾸듯 흘러간다. 그 안개는 누군가의 삶을 적당한 거리에서 꿰뚫어 볼 때 피어나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애수의 구름이다. 사람이 사람의 서글픔을 이해하는 것. 그것만큼 아름답고 성숙한 일이 또 있을까. 섭은낭(서기)의, 허우샤오시엔 감독의 그 마음이 공기로 전해지는 영화다.

장성란 기자 hairp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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