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양질의 콘텐트가 해법” 교훈 남긴 역사교과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이준식 교육부 장관이 어제 중·고교 국정 역사교과서의 현장 적용 시점을 1년 유예했다. 내년에는 현행 검정교과서를 그대로 사용하고 2018년부터 국·검정을 혼용토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 장관은 “여러 기관과 협의를 거쳐 2018년부터 전국 6000개 중·고교가 자율적으로 선택하도록 방침을 정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국론 분열과 갈등을 불렀던 국정교과서는 시한부 운명에 직면했다. 최종 존폐 여부 또한 사실상 차기 정부가 결정하게 됐다.

 하지만 어정쩡한 ‘국·검정 혼용’ 안에 대한 논란은 여전하다. 교육부는 내년에 검정을 유지하도록 교육과정 고시를 재수정하고, 통상 16개월이 걸리는 ‘교과용 도서에 관한 규정(대통령령)’도 조속히 바꾸겠다는 방침이다. 그럴 경우 국회에 상정된 ‘국정교과서 금지법’이 통과되거나 차기 정부의 성격에 따라 또 다른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교육 현장의 혼란은 안중에도 없이 “여러 기관과의 협의” 운운하며 눈치만 보는 교육부 존재의 이유를 묻고 싶다.

 이번 사태는 우리에게 고품격·고품질의 콘텐트만이 해법이라는 교훈을 남겼다. 국정교과서를 유예한다고 좌편향으로 지목된 검정교과서가 면죄부를 받는 것은 아니다. 어수선한 틈에 ‘기울어진 교과서’의 생명만 연장됐을 뿐이다. 이를 대체하려던 국정교과서가 건국절 논란을 비롯한 편향성과 적확성을 극복하지 못한 탓이다.

 앞으로 남은 숙제는 최고의 교과서를 만드는 일이다. 헌법 31조에 명시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에 충실한 객관성과 균형감을 갖춘 콘텐트가 그 해법이다. 핵심은 필진이다. 집필 실적을 논문에 버금가는 실적으로 인정하고, 집필 기간을 충분히 보장하며 최고의 대우를 해줘야 한다. 1년 안에 새 검정교과서를 개발하도록 하겠다는 조급증도 버려야 한다. 특히 검정 심사본 제출 때 국정교과서처럼 국민에게 공개해 검증을 받는 것도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정치권과 학계는 이념 논리를 접고 콘텐트만 봐야 한다. 그래야 사실(事實)이 아닌 사실(史實)로서 다양성과 균형감을 갖춘 최고의 교과서를 얻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