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분열된 보수, 쇄신 경쟁만이 살길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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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비박계 중심의 새누리당 의원 29명이 어제 집단 탈당계를 제출하고 개혁보수신당 창당을 선언했다. 발기인대회와 시·도당 창당대회를 거쳐 내년 1월 24일 공식 창당한다. 사상 초유의 보수 집권당 분당으로 정치권은 26년 만에 4당 체제로 바뀌었다. 물론 현재의 4당 체제는 총선 결과물이 아닌 친박·비박 내홍의 산물이란 점에서 안정적인 모습이 아니다. 새누리당 내에선 신당에 동참할 의원이 상당수 대기 중이고, 유력 대선후보의 영입 여부에 따라 정치판이 언제, 어떤 식으로 헤쳐 모일지 모를 일이다. 그래서 ‘한시 별거’란 얘기까지 나온다.

추락한 보수 가치 재건하려면
위기 부른 패권정치 청산하고
포용·책임의 리더십 살려내야

 새로 등장한 4당 체제엔 많은 뜻이 담겨 있다. 먼저 박근혜 대통령이 식물 대통령이 된 마당에 국정을 이끌어야 할 집권당마저 쪼개졌다는 정치적 의미가 크다. 새누리당 의석 수는 100석이 무너져 신당과 야당들이 추진하는 법안을 저지하기도 힘들게 됐다. 국정 주도권은 명실상부하게 비(非)새누리당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새누리당에서 몇 명이 더 탈당하느냐, 제4당으로 출발한 신당이 원내 3당으로 올라서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다. 분당을 계기로 새누리당과 개혁보수신당이 과연 나라와 국민을 이끌 새로운 비전과 리더십을 갖춘 진정한 보수 정당으로 거듭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새누리당은 친박의 공천 전횡으로 지난 총선에서 참패했다. ‘진박 감별’ 운운하며 나라보다는 대통령, 당보다 계파를 우선했던 편가르기가 결국 새누리당의 친박 사당(私黨)화를 낳았다. 분당과 보수의 위기는 그 결과물이다. 그럼에도 패권을 쥐고 흔들면서 나라를 이 지경에 이르게 한 친박은 자숙·자중하기는커녕 오히려 똘똘 뭉쳐 시대적 흐름에 맞서고 있다. 촛불 민심은 두 달째 최순실 국정 농락과 박 대통령의 무능에 분노하지만 새누리당 친박 세력은 오불관언이다. 반성도 정계 은퇴도 없다. 인적 청산의 대상자로 거론되는 서청원·최경환·이정현 의원 등은 탈당이나 출당 가능성을 일축한다. 그러니 당 지지율은 연일 사상 최저치를 갈아 치우고 당내엔 내세울 만한 대선주자 한 명 없는 것이다. 친박계의 눈에만 촛불 민심이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바람직한 건 보수와 진보의 양대 가치가 공존하고, 이를 대변하는 두 세력 간의 건전한 경쟁으로 국가와 사회가 발전하는 것이다. 보수의 궤멸은 그런 점에서 우리 사회에 재앙이다. 보수는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태어나야 한다. 계파 이익만을 앞세운 패거리 정치, 맹목적 충성 등 보수를 추락시킨 동인을 걷어내는 게 출발선이다. 배려와 포용, 책임과 헌신이란 보수의 가치를 되살려야 한다. 오만·불통의 담을 무너뜨려야만 국민을 설득할 도덕성과 리더십을 살려 낼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제 막 출범한 보수신당이든 새누리당이든 가야 할 길은 분명하다. 나라의 안위와 국민 경제를 무한 책임지겠다는 진정성을 국민에게 보여야 한다. 신당을 향한 국민 반응이 일단 우려보다 기대하는 쪽에 선 데는 이런 뜻이 담겨 있다. 무한대의 쇄신 경쟁만이 보수가 살아날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