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사설

4당 체제, 대권병자들의 선거도구로 변질되지 말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정당의 출현은 크고 작고 간에 시대상황을 반영하고 시대과제를 제출한다. 오늘 새누리당 의원 30여 명이 집단 분당을 선언하고 가칭 개혁보수신당을 만든다고 한다. 내년 1월 24일을 중앙당 창당일로 잡았다고 하니 박근혜 대통령 탄핵 판결 뒤 60일 이내에 치러질 19대 대선 때 후보를 낸다고 봐야 한다. 지난 총선을 앞두고 제1야당이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으로 분당된 데 이어 내년 대선을 앞두고 집권당도 새누리당, 개혁보수신당으로 쪼개지는 것이다. 이제 정국은 유권자에게 낯설기만 한 4당체제로 굴러가게 됐다. 4당체제는 1987년 민주화 이후 이른바 1노3김(노태우·김영삼·김대중·김종필) 시대가 열리며 만개했다. 90년 3당 합당으로 종료된 지 26년 만에 다시 등장한 것이다.

이번 4당체제는 30년 만에 민주주의 역사를 새로 쓴 촛불 평화투쟁의 산물이다. 촛불은 신성한 국가권력을 사인(私人)에게 갖다 바친 주권횡령·헌법파괴 범죄를 가차없이 태워버렸다. 4당체제가 불통과 불투명, 역사 후퇴로 점철된 박근혜식 궁중 정치를 단순히 청산하는 것만으로는 시대적 숙제를 완수했다고 볼 수 없다. 촛불은 한국 사회의 고질병인 패거리 정치, 무책임 대통령제, 기업형 뇌물경제에서부터 상사의 부당한 지시에 굴종하는 침묵의 나선문화에 이르기까지 사회 곳곳, 문화 저변에 깔린 적폐들을 하나씩 찾아 소각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새로운 4당체제는 수권 능력과 정책으로 경쟁해야 할 것이다. 고질적인 지역감정이나 마타도어식 인신 공격에 매달린다면 한국 정치는 발전하지 못한다. 또한 4당이 대권병에 걸린 유력 주자들의 선거도구로 전락하는 것만은 배격해야 한다. 유권자도 이를 철저히 감시해야 한다. 국제정치·경제 환경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데 한국은 권력 진공 상태에 빠져 바람 앞의 촛불 신세다. 각 당은 안보의 울타리를 튼튼히 치고, 혁명적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근본적인 개혁정책을 통해 스스로 수권 정당의 자격이 갖춰졌음을 입증해 주기 바란다. 경쟁 속 4당 협치체제가 무리 없이 작동한다면 대선 뒤 한국 정치의 새로운 발전 모델로 뿌리내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