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무관심과 지역주의 폐해 없애려면 비례대표 강화해 단순다수제 보완해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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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6호 10면

지난 4·29 재·보궐선거 당시 서울 관악을 지역에 붙은 후보들의 포스터. [뉴시스]

선거가 없다면 대의제는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모든 민주주의 국가는 선거를 치른다. 그러나 그 방식은 다양하다. 영국과 미국은 의원 전원을 한 선거구에서 1위를 차지한 1명을 선출하는 소선거구 단순다수제를 채택하고 있다. 유럽과 남미 다수 국가는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로 의원을 선출한다. 독일과 일본처럼 지역구에서 1명을 선출하는 소선거구 단순다수제와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혼합한 형태를 운용하고 있는 국가도 다수다.


우리 선거제도는 단순다수제 중심의 혼합형이다. 300명 의원 중 246명은 소선거구 단순다수제로, 나머지 54명은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로 선출한다. 두 선거가 별도로 운용된다는 점에서 ‘병립형’이기도 하다. 그런데 학계와 시민단체 그리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조차도 이를 바꿔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양대정당 과대대표된 한국 정치무엇이 문제인가? 가장 큰 문제는 현행 제도가 ‘공정’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특히 지지정당 득표율과 의석률 간의 차이가 크다. 제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정당 득표에서 42.8%를 얻었으나 의석은 50.7%인 152석을 차지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득표율이 36.5%였지만 의석은 42.3%인 127석이었다. 각기 득표율에 비해 24석과 18석을 더 얻은 것이다. 반면 당시 통합진보당은 10.3% 득표했지만 의석률은 4.3%로 13석을 차지하는 데 그쳤다. 득표율에 비해 18석가량을 손해 봤다. 지역구 의원 246명 중 67명은 50% 미만의 지지로 당선됐다.


이런 현상의 원인은 우리 제도가 혼합형이지만 대다수 의원을 소선거구 단순다수제로 선출한다는 데 있다. 지역구에서 1명만 선출하기 때문에 다른 후보를 지지한 표는 사표(死票)가 된다. 만약 한 정당의 후보들이 모든 선거구에서 40%를 득표해 전원 당선됐다면 득표율은 40%지만 의석률은 100%다. 극단적 가정이기는 하지만 이것이 ‘승자 독식’이라는 단순다수제의 특성이다.


이 같은 단순다수제는 어떤 부정적 결과를 낳을까. 첫째, 양대 정당 중심으로 의석이 독점되기 때문에 소수 의견이 반영되기 어렵다. 새로운 정치 세력의 의회 진입도 힘들어 사회적 변화에 무뎌지게 된다. 둘째, 정치적 무관심과 소외가 심화될 수 있다. 1위 이외의 후보를 선택한 유권자 표는 대표 결정에 반영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는 ‘지역주의’와 결합해 부정적 측면을 더 악화시킨다. 영남과 호남에서 약세 정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은 무시되기 때문이다. 자신의 의사가 선거 결과에 반영되지 못할 경우 투표 자체를 포기할 수 있다. 우리나라 투표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는 현실은 이를 증명해 준다. 현재 무당파층이 40% 이상 된다는 점에서 이런 무관심이 지속된다면 우리 민주주의의 역동성은 상실될 것이다.


일본·독일식 혼합형 고려해볼만그렇다면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어떻게 제도를 바꿔야 할까. 그동안 여러 방안이 제시됐다. 첫째, 현재의 혼합· 병립형을 유지하면서 비례대표 수를 늘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몇 개의 권역으로 나누어 선출하는 방식이다. 독일의 경우 지역구 의원과 비례대표 의원 비율이 5대 5이며, 일본은 6대 4 정도다. 혼합형 국가 대부분이 우리나라보다 더 많은 비례대표를 권역별 정당명부식으로 선출한다.


둘째는 독일식 혼합형 연동제다. 이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제안한 방식이기도 하다. 이 제도는 전국을 몇 개의 권역으로 나누고 전체 의원 수를 각 권역의 인구 수에 따라 배정한다. 유권자는 지역구 후보와 정당에 각각 1표씩 행사한다. 만약 A권역이 배정받은 의원 수가 100명이라고 가정해보자. 그리고 한 정당이 A권역의 지역구 선거에서의 당선자가 30명, 정당 득표는 40%라고 해보자. 이 상황에서 그 정당이 A권역에서 얻을 수 있는 비례대표 수는 정당 득표로 계산된 40명(100명의 40%)에서 지역구 당선자 30명을 뺀 10석이다. 지역구 선거에서 당선자가 많을수록 그 정당이 얻을 수 있는 비례대표 수는 줄어드는 것이다. 즉 두 선거가 ‘연동’돼 있는 것이다. 지역구 선거에서 당선자를 내기 힘든 소정당에는 병립형보다 더 유리한 제도다.


두 방안 모두 득표율과 의석률 차이를 줄임으로써 단순다수제의 불공정성을 시정할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정치적 견해가 의회에서 대변될 수 있으며, 정치적 무관심과 소외도 일정 정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단순다수제보다 비례대표제에서 투표율이 더 높다는 것은 이미 증명됐기 때문이다. 한 정당의 특정 지역 독점 현상도 완화시켜줄 것이다. 또한 비례대표를 통해 정치 신인이나 여성의 의회 진출을 용이하게 해줄 것이다. 나아가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의 확대는 정당 중심의 정치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한국 민주주의의 과제인 정당 강화와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획정위 결정 제도개혁 바람 꺾을 수도문제는 양대 정당인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의 지역구 의원들이 변화를 원치 않는다는 데 있다. 제도 개편을 위해 비례대표 수를 늘려야 하고, 그를 위해서는 전체 의원 수를 확대하거나, 총수는 그대로 두고 지역구 의원 수를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또 대정당에 불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여러 이유를 들어 단순다수제 중심의 현 제도를 옹호한다.


최근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는 국회의원 지역구 수를 244~249개 내에서 결정하겠다고 발표했다. 현행 지역구 수준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비례대표는 오히려 줄어들 수도 있다. 제도 개선을 통해 한국 정치 발전을 이루고자 하는 바람은 당분간 접을 수밖에 없게 됐다. 물론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최선의 제도는 없다. 그러나 현재 한국 정치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이고, 그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떤 차선의 제도가 필요한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계속돼야 한다. 양대 정당에 변화를 위한 선의와 의지를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면, 제도를 바꾸는 방법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용주 동의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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