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0t 케이블 매단 ‘공중기술’ 지구 두 바퀴 길이 강선 설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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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0호 4 면

토종 교량 건설기술 집대성 길(路)은 인간의 역사다. 오로지 인간만이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을 건설한다. 시공간을 정복하려는 욕망은 길 없는 바다 위에 다리를 놓았다. 여수와 광양 바다를 잇는 이순신대교. 우뚝 솟은 세계 최고 높이의 주탑은 한국 토목기술의 역사와 자부심이 만들어낸 결정체다. 대림산업 토목사업본부 서영화 상무는 “대한민국 현수교 시공 기술은 이순신대교를 통해 비약적으로 성장했다”고 자부했다.

교량은 토목건설의 꽃이다. 육지와 바다, 하늘에서 모두 작업이 이뤄지는 특수성 때문이다. 하물며 바다 위를 1㎞ 이상 가르는 ‘초장대교량’은 가위 ‘꽃 중의 꽃’으로 통한다. 수만 대의 차량이 오가는 상판, 이를 지탱하며 풍랑과 바람을 이겨내는 주탑과 케이블 중 하나만 틀어져도 건설이 불가능하다. 자국 기술로 현수교를 만들 수 있는 곳은 세계적으로 다섯 손가락을 꼽는다.
이순신대교의 시공사인 대림산업은 길이 2260m의 바닷길을 오로지 순수 국내 기술로 만들었다. 설계부터 장비·자재·기술진까지 현수교와 관련된 모든 것을 국산화했다. 일본·스위스·독일 등 세계 토목학회 관계자 1만5000여 명이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현장을 찾았다. 이순신대교 개통으로 우리나라는 세계 여섯 번째 현수교 기술 자립국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여수~광양 2260m 이은 첫 한국형 현수교
케이블은 현수교의 시작과 끝이다. 현수교의 실질적 안전장치다.
이순신대교 케이블 하나의 두께는 67.7㎝. 일본에서 가장 긴 현수교인 아카시대교에 사용된 케이블(71㎝)보다도 가늘다. 케이블은 견고하면서도 바람의 영향을 덜 받도록 직경이 좁아야 한다. 속에는 두께 5.35㎜의 피아노 줄 같은 강선 수만 가닥이 평행으로 배열돼 있다. 하나당 약 4t의 무게를 지탱한다. 서 상무는 “강선은 한 가닥씩 놓일 자리가 정해져 있다. 1만2800가닥의 강선 위치를 실시간으로 측량해 시공에 반영한 것은 최고 수준의 케이블 형상관리기법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정교하게 짜인 케이블은 무려 4만t의 하중을 견뎌낸다. 성인(60㎏)이 66만여 명, 제주 인구만큼 매달려도 끊어지지 않는다.
하나에 6000t이 넘는 케이블을 연결하는 ‘공중기술’도 필요하다. 광안대교 등 기존의 현수교는 이 장벽을 넘지 못했다. 해외(주로 일본)의 설치 장비와 전문가가 이를 도맡아 했다. 대림산업은 자체 해결했다. 토목관리팀 김지훈 부장은 “국내에 공법을 만드는 게 처음이라 모든 과정이 연구개발이었다”고 말했다.
자체 개발한 에어스피닝 공법에는 바퀴 달린 활차 모양의 ‘스피닝 휠’은 다리 끝과 끝을 왕복하며 한 방향당 4개씩 강선을 잇는다. 강선은 지상에 ‘언릴러’를 통해 스피닝 휠의 2배 속도로 풀리며 설치 템포를 유지한다. 그동안 텐션컨트롤 타워는 실시간으로 장력을 제어하며 케이블 형상을 잡는다. 케이블 설치를 위해 스피닝 휠은 2㎞가 넘는 여수~광양 거리를 1600번 왕복했다. 사용된 강선 길이는 지구를 두 바퀴(7만2000km) 돈 거리와 맞먹는다.

주탑 길이 세계 최장 270m

이순신대교의 주탑은 270m로 세계에서 가장 높다. 주탑 규모는 주경간장(주탑 간 거리)과 상판 높이(해수면부터 상판까지의 높이)를 결정한다. 이순신대교는 주경간장 1545m, 최고 상판 높이 85m로 국내에서 가장 길고 높다. 초대형 컨테이너 선박도 다리 밑을 무리 없이 통과한다. 세계 최고(最高)인 이순신대교로 남해 앞바다는 육지와 해양 이동성 모두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완공 시간은 불과 11개월. 덴마크 그레이트 벨트교 주탑(254m) 건설에 30개월이 소요된 것과 비교하면 놀라운 수준이다. 콘크리트 거푸집을 자동으로 올리면서 동시에 철근 작업을 진행하는 ‘슬립 폼(slip form)’ 공법이 주효했다.

63빌딩보다 높은 주탑 11개월 만에 완공
주탑은 위로 갈수록 좁아진다. 자동 타설에 쓰는 슬립 폼 모양을 조절하는 데 GPS, 레이저 등 첨단 장비를 동원했다. 각 주탑 꼭짓점의 좌표 값을 입력하고, 바닥에서 쏘아 올린 레이저를 보며 실시간으로 위치를 잡았다. 20~30cm 올릴 때마다 한 차례씩, 하루에 5회 이상 초정밀 계측을 반복하며 오차를 최소화했다. 서 상무는 “형상 해석 프로그램이 실시간으로 시공에 반영되도록 ‘원스톱’ 시스템을 자체 구축했다”고 말했다.
케이블을 심는 앵커리지 규모도 놀랍다. 이순신대교에는 중력·지중정착 방식이 모두 적용됐다. 여수 묘도에는 33m 지하 암반에 케이블을 직접 정착하는 지중정착식을 적용했다. 국내 최초다. 광양 쪽에는 직경 68m, 깊이 33m의 땅을 파고 아파트 1800가구를 지을 만큼 콘크리트(40만t)를 부어 중력식 앵커리지를 구축했다.
이순신대교는 ‘트윈 박스 거더’로 다리의 내풍 안정성은 높이면서 무게를 낮췄다. 김지훈 부장은 “비행기 날개 모양의 트윈 박스는 일체형보다 무게는 5% 덜 나가면서 내풍 안정성은 65% 높다”고 설명했다. 국내 현수교에 도입한 것은 이순신대교가 최초다. 도로 중간에 바람이 통하는 길을 내 초속 90m의 바람을 견딜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최고 등급의 태풍(초당 44m 이상)이 불어도 끄떡없다.

박정렬 기자 park.jungry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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