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도안·두테르테…중소국 스트롱맨, 강력한 내치 기반으로 실리 외교 닮은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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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국의 철권 외교로 국제 정세가 요동치는 가운데 터키·필리핀 등 중소국가도 강력한 지도자들을 바탕으로 이권 챙기기에 나서고 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1960년대부터 추진해 오던 유럽연합(EU) 가입을 사실상 포기한 채 중국·러시아와 관계 개선을 도모하고 있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오랜 우방국이던 미국과 거리를 두면서 중국과의 경제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터키의 태도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 사건은 지난 20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터키·러시아·이란 3개국 고위급 회담이다. 이 회담에서 3개국은 시리아 내전 종식을 지원하고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를 격퇴하는 데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수니파 이슬람 국가인 터키는 지금까지 미국 주도 연합군과 손잡고 시아파 계열인 바샤르 알아사드 정부에 맞서 시리아 반군을 지원해 왔다. 반면 러시아와 시아파 국가인 이란은 알아사드 시리아 정부를 도왔다. 터키는 이번 협정을 통해 러시아·이란과 ‘적과의 동침’에 들어간 셈이다.

터키, 러시아와 시리아 문제 협력
필리핀은 미국 대신 중국에 접근

에르도안이 반대 세력을 탄압하고 권위주의적 행보를 이어가면서 기존 동맹인 유럽·미국과 사이가 멀어지고 있다고 CNN은 분석했다. EU는 터키의 인권 현황에 사사건건 문제를 제기하고, 미국은 터키가 지난 7월 쿠데타를 주모했다고 주장하는 터키 성직자 펫훌라흐 귈렌의 인도를 거부하는 등 터키와 유럽·미국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CNN은 “독재자의 길로 향하는 에르도안에게 가장 강력한 적은 유럽과 미국”이라며 “에르도안이 갈등만 유발하는 지난 동맹을 버리고 ‘힘의 외교(power politics)’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외교를 모색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필리핀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다. 지난 6월 취임한 두테르테는 마약 사범을 즉결 처형하겠다며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EU와 미국이 필리핀 국민의 인권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내자 두테르테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에게 “개XX”라고 욕설하는 등 불쾌감을 표하며 급속도로 중국·러시아와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실리와 힘을 중시하는 두테르테에게 인권 운운하는 EU나 미국은 눈엣가시가 됐다. 두테르테는 지난 19일 필리핀 대통령궁에서 성 김 주필리핀 미국대사를 만나 “미국은 필리핀에 4억 달러(약 4800억원)를 지원하겠지만 중국은 150억 달러(약 17조8300억원)를 줄 것”이라며 “미국의 지원은 필요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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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도 국제 정세가 혼란한 틈을 타 ‘하나의 중국’ 원칙에 반기를 들며 중국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은 지난 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통화했다. 중국은 21일 대만의 22개 수교국 가운데 하나였던 아프리카 소국 ‘상투메 프린시페’를 포섭해 대만과 단교하게 만드는 철권 외교로 응수했다.

◆특별취재팀 : 도쿄·워싱턴·런던·베이징=오영환·김현기·고정애·신경진 특파원, 서울=강혜란·홍주희·유지혜·김상진·이기준 기자 hong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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