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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저출산 고령화, 세대 간 분업으로 풀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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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김태유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

김태유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

“비 오는데 들에 가랴 사립 닫고 소 먹여라, 마이 매양이랴(장마가 계속되랴) 쟁기 연장 다스려라, 쉬다가 개는 날 보아 사래 긴 밭 갈아라.”

2030년 2.6명이 노인 한 명 부양
감당 어렵고 성장에도 부정적
젊은 층이 가치 창조 분야 맡고
서비스 분야 고령자 역할 늘리자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경제가 피폐하고 민생은 도탄에 빠졌는데 사대부는 당쟁에만 몰두하던 암울한 시절 고산 윤선도 선생의 하우요(夏雨謠·1642년)이다. 당시 국가의 근본인 백성에게 전하는, 세상의 어지러움에 현혹되지 말고 내일을 위해 농사를 준비하라는 교훈이었으리라.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국 경제는 성장동력을 잃어가고 있다. 안으로는 청년이 희망을 잃고 장년은 노후가 막막한데, 밖으로는 북핵 문제의 해결도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최근 대통령 탄핵과 조기 대선의 가시화로 불확실성이 극에 달하니 불현듯 고산 선생의 가르침이 떠오른다. 이러한 때일수록 지성인들이 세상의 어지러움에 휩쓸리지 말고 한국 경제가 당면한 가장 중요한 과제부터 해결해 나갈 준비를 해야 한다는 가르침이 아니었을까?

한국 경제는 성장동력을 잃은 지 오래다. 건강치 못한 건설 투자와 정부 재정 투입에도 불구하고 악재가 겹쳐 올 4분기에는 0.1%의 성장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금융위기 이후 수출·수입·민간소비·자본형성·실업률 등 경제지표 회복세는 주요국들 중에서 최하위권이다. 무엇보다도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로 인한 생산가능인구 감소(2017년 이후)는 한국 경제가 직면한 위기 중 가장 큰 위기다.

정부는 저출산·고령화 문제 해소를 위해 지난 10년간 152조원의 예산을 투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출산율은 초저출산율의 기준인 1.3명에도 못 미치고 있다. 또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산출한 고령화 정책대응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2개국 중 한국이 최하위권이다. 노인 빈곤율과 노인 자살률도 가장 높다. 그렇다고 이것이 한국 정부의 실패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어떤 선진국도 아직 저출산·고령화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저출산·고령화 문제는 기본적으로 경제활동인구 몇 명이 고령자 몇 명을 부양하는가에 달려 있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한국은 경제가 역동적으로 발전하던 1990년 고령자 1명을 경제활동인구 13.5명이 부양했다. 그런데 2030년에는 고령자 1명을 2.6명이 부양해야 할 것이란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일하는 젊은이의 허리가 휘어지기 전에 부러져 버릴지도 모른다.

60세 이상을 부양 대상 고령자로 가정할 경우 평균 수명이 90년 70세에서 2010년 80세로 늘어나 사망률을 제외하면 고령자가 약 두 배 증가했다. 평균 수명이 90세가 되면 고령자가 약 세 배 증가하는 셈이 된다. 늘어난 고령자의 부양을 위해 부족한 경제활동인구를 출산으로 해결하려면 자녀를 4명, 6명씩 낳아 인구가 두세 배 증가해야 한다. 이를 이민으로 해결한다면 외국인 숫자가 한국인보다 많아져 우리나라가 남의 나라가 될 판이다. 따라서 출산이나 이민으로는 고령화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1776년)에서 핀 공장의 예를 들어 개인 간 분업이 국부의 원천임을 설파했다. 한 사람이 평균 20개를 만들다가 18개 공정으로 나눠 분업을 시켰더니 평균 4800개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고령화시대에서는 세대 간 분업을 통해 국부를 다시 한번 획기적으로 증가시킬 수 있지 않을까? 카텔과 혼(Cartell & Horn)의 모형에 따르면 젊은 층은 창의성과 연관된 유동지능(fluid intelligence)이 높고 고령층은 경험과 관련된 결정지능(crystallized intelligence)이 높다고 한다. 젊은 층은 유동지능과 관련된 과학·첨단기술·회계·산업디자인 등의 가치를 창출하는 일모작 직업에 주로 종사하고, 고령층은 결정지능이 필요한 행정·관리·헬스케어 등 서비스 계통의 가치를 이전하는 이모작 직업에 종사하면 세대 간 분업에 의해 국가 경제적 효율이 획기적으로 높아질 것이다. 이것이 저출산·고령화시대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는 ‘이모작 사회’의 모습이다.

고령화 문제는 대한민국이 당면한 가장 중요하고도 시급한 과제다. 당장 출산율을 높였다고 하더라도 새로 태어날 아기가 성인이 돼 경제활동에 적극 참여하려면 2050년께가 돼야 한다. 그러나 그때는 한국 경제가 선진국으로 재도약에 성공하느냐, 아니면 후진국으로 전락하느냐가 이미 판가름 난 이후일 것이다. 왜냐하면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이 세계를 곧 지식기반 사회의 선진국과 후진국으로 다시 양극화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 경제 이모작에 관해서는 지속적인 연구와 검토가 필요하겠지만 우리가 직면한 절체절명의 위기인 고령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으로는 이론과 정책을 막론하고 이모작 사회가 아직까지 유일한 대안이라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장마 중에 소와 농기구를 챙겨야 하듯 국정이 혼미한 이때가 바로 이모작 사회를 미리 준비할 절호의 기회다.

김태유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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