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작품속의「분단상황」|한국과 서독의 경우 비교분석『계간미술』특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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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녹음 짙어지는 6월이 오면 우리는 과거의 화약냄새를 맡는다. 6·25의 아픔이 되살아 나고 민족분단의 의미가 되새겨진다. 분단극복이 민족의 과제인 지금 우리 미술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때 마침『계간미술』여름호가 「독일의 분단미술」을 특집으로 꾸몄다. 독일분단미술의 현장과 우리의 현실을 함께 가늠해 볼 수 있는 자리가 되고 있다.
찰리검문소는 베를린 중심부의 미군검문소다. 이 검문소 이름을 본뜬 찰리검문소 미술관은 분단독일의 상처와 극복의 노력들을 한자리에 모은 분단기념관이다. 이 미술관은 분단주제 미술품의 수집·전시 뿐만 아니라 분단을 주제로 한 공모전의 조직과 관계서적의 출판을 통해 독일인은 물론 이곳을 찾는 전세계의 관광객들에게 독일의 분단상황을 일깨우는 역할을 하고 있다.
찰리검문소 미술관은 1983∼84년 「그림을 통한 장벽의 극복」이란 주제의 공모전을 주최했다. 미술관측이 출품을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베를린장벽의 컬러사진을 제공하고 그 외에 출품작가들이 각자의 아이디어를 그려내도록 했다. 전문가와 아마추어, 어른과 어린이 할 것없이 누구나 참가한 이 공모전엔 총2백88점이 응모, 그중 30점이 수상하는등 성황을 이뤘다.
이에 앞서 이 미술관은 78∼79년 「세계사가 드러나는 곳」이란 주제로 미술관 건물 외벽을 위한 벽화공모전을 개최했다. 출품작가들은 건물사진을 가지고 그 외벽에 분단을 주제로한 벽화의 밑그림을 그렸다. 이는 분단을 주제로한 미술공모전의 첫 사례로 이 문제에 관한 작가들의 관심을 새롭게 불러 일으켰다.
한편 80년대에 들어오자 베를린 장벽은 애초에 장벽을 건설한 이들이 전혀 예측치 못한 새로운 활기를 맞게됐다. 4·1m 높이의 이 장벽이 편편한 조립식 콘크리트 벽에 이음새가 없는 제4세대 장벽으로 대체되면서 이곳은 그림을 그리기 위한 거대한 화폭으로 인식된 것이다.
독일 분단미술 작품을 살펴본 김윤수씨(미술평론가)는 『조형적인 측면에서 예술작품으로 그린 것과 메시지 전달에 초점을 둔 작품으로 양분할 수 있다』고 말하고 『전자의 경우 표현방식이 다양한 것이 특징』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독일 분단미술 특색의 하나로 『분단의 원인이나 극복대상을 동독으로 보지 않고 외세나 주변 열강들에 두는 점』도 함께 지적했다. 김씨는 『최근 서구미술에서 독일의 위치가 보다 중요해지는데 이는 독일만의 분단상황이 큰 요인이 되고 있는게 아닌가』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김정헌씨(화가)는 우리분단미술의 현실에 대해 아쉬우나마 80년대 몇차례의 주제전을 들었다. 지난해 민족미술협의회가 주최한 「통일전」, 80년 「현실과 발언」의「6·25전」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김씨는 이런 전시회의 가장 큰 딜레머로『분단상황이나 통일이란 문제가 아직 피부적으로 절실히 와닿지 않았던 점』이라고 말하고 따라서『작품이 관념적이고 피상적이란 비판을 받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그는 이런 작업들이 한국 분단미술의 가능성을 탐색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이구열씨(미술평론가)는『이제까지 분단이나 통일이란 주제가 우리 미술에 제대로 나타나지 않은 것은 미술에 대한 작가들의 의식이 「예능」에 국한된 편협한 미술관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문화가 정치적으로 경직된 상황을 깨는 것이라면 미술 또한 분단과 통일에 대한 정치적 경직을 풀어줄 수 있을것』이라며 『이를 위해선 표현의 자유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이근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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