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보 이후의 정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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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길고 긴 하루」는 지났다. 예정대로 민정당은 노태우후보로 뽑았다. 40년 헌정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재임 중에 정부이양의 기틀을 다졌다는 점에서 이는 분명 새로운 경험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러나 집권당의 후계자 선출행사는 야권의 격렬한 반발 속에 여권인사들만 참석한 가운데 치러졌다. 이로써 여권은 4·13조치에 따른 정치일정의 첫 단계에 들어갔다.
대통령후보 수락연설에서 노대표는『양대국가대사가 성공한 뒤 국민적 여망인 합의개헌을 반드시 성취해 낼 것』을 다짐했다.
노후보는 또 현실을 직시하는 자세, 정직한 자세를 강조하고『평화적 민주발전을 위해서라면 누구와도, 어떤 주제를 놓고라도 기꺼이 대화할 용의가 있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물론 현재 노후보가 처해있는 복잡 미묘한 위치에 비추어 수락연설에 앞으로의 정치일정에 관한 구체적인 방향을 담기 어려운 사정은 짐작이 간다. 그러나 전반적인 내용이 국민의 개헌열망을 충족시키기엔 미흡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합의개헌의 방법에 대해 그는 야당의 정치관에 큰 변화가 일어나 의원내각제 채택으로 귀결되리라는 전망을 내렸을 뿐 보다 구체적인 복안은 내놓지 않았다.
대화에 관해서도 적극적인 의사표명은 했지만 야당의 4·13조치철회 요구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대통령이 엄연히 통치권을 행사하는 마당에 차기 후보의 운신 폭에는 제한이 있게 마련이다. 후보 등장이 곧 집권층의 권력구조에 기본적인 변화를 주는 요인은 아니다.
그렇지만「후보」가 된 이상 나름대로의 이미지 구축은 필수 불가결한 과제다. 보다 나은 미래에 대한 기대가 후보에게 모아지고 또 후보는 그러한 국민의 희망과 기대에 부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노대표가 할 일은 따라서 국민의 열화와도 같은 여망인 민주화의 적극적인 수용이라는 말로 요약된다.
노대표는 오래 전에 이 나라의「진정한 민주화」가 정치의 최대과제임을 설파했지만 여태껏 국민들은 피부로 느끼는 실천은 아무것도 없다고 믿고 있다.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으로 상징되는 일련의 인권침해 사례는 국민을 실망시킨 것은 물론 정부의 도덕성에 깊은 상처를 남겨 놓았다. 국민간에 널리 확산된 이 같은 불신과 의문을 풀 수 있는 해답을 노후보는 내놓아야 한다. 여권의 일방적 정치일정대로 차질없이 간다면 노후보는 내년 2월 다음 번 대통령으로서 대권을 승계하게 된다.
그러나 거기까지의 도정 못지 않은 난관은 그 다음에도 얼마든지 있다. 민정당이 말하는「평화적인 정권교체」는 이 땅의 민주화를 향한 머나먼 과정 가운데 하나의 고비는 될 수 있어도 그 자체가 목표는 아니며 그리 되어서도 안된다.
야권의 6·10규탄대회는 공권력의 저지로 우선은 넘어 갔다. 그러나 저항의 요인은 이로써 하나가 더 가중되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야당 또한 집권당의 권력질서가 재편되는 현 시점을 보다 나은 정치의 장으로 만드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결국 지금의 난국을 풀 수 있는 방안은 대화와 타협 말고는 없다. 어느 쪽이건 과잉 자신감은 금물이다. 주권자인 국민의 뜻을 겸허하게 헤아려 이를 정치현실에 반영하고 실천할 수 있는 세력이 궁극적으로 최후의 승리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재삼 강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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