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이해시키고 대화 하는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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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2일 저녁 청와대 만찬에서 사실상 대통령후보로 결정된 후 연희동자택으로 돌아온 노태우민정당대표위원은 「대임」을 맡은 감격에 젖어 있었다.
자택에서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과 정원에서 마주 앉은 노대표는 첫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이제 이것이 피할수 없는 운명일진대 이 소명에 신명을 바치겠읍니다. 모든 분들과 함께 이 나라의 「생존」 그리고 이 나라의 계속적인 「발전」을 위해 신명을 바칠까합니다』
노대표는 매우 상기된 얼굴로 목소리에는 열기가 배어있었고 「신명을 바치겠다」는 대목에서는 손을 크게 휘두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대통령재임중에 후계 후보지명은 처음있는 일인데 감회가 어떠셨읍니까.
『역사상 처음있는 일입니다. 「최초」라는 대상의 주인공의 입장에서 눈물이 핑돌며 말할바를 모르겠어요. 각하께서 준비를 많이 하셨더군요. 각하가 정식으로 「노대표밖에 없다」 「이것이 대통령인 나의 바람이요 내뜻이다」「내뜻에 호응하면 받아들여달라」고 그러시니 가슴이 메고 몸둘바를 모르겠더군요.』
노대표는 대권의 후보자가 지명되는 순간의 느낌과 분위기를 생생히 옮겨주었다. 『한말씀하라고 그러시는데 무슨말을 해야할지 말이 나와야지. 그래서 「역사의 소명에 대한 두려움에 몸둘바를 모르겠읍니다」고 말했지요. 그리고 「이것이 운명이라면 내 개인뿐 아니라 여러분 모두의 운명입니다. 동지여러분이 성원하고 지도해 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노대표는 『이것이 하늘의 조화, 하늘의 명령이라면 그것을 어떻게 받들어 수행할 것인가 두려움밖에 없읍니다. 국민기대에 어떻게 보답할 수 있을지…』라고 했다.
그러더니 노대표는 갑자기 의자에서 일어나 잔디밭 구석 사과나무목으로 걸어가면서 『저기에 내 뜻이 담겨있다』고 했다.
『이게 재작년에 심은 나무지요. 내가 그동안 정치를 하면서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오늘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얘기를 인용한 것은 매듭을 여는 희망을 심고 결실을 보자는 뜻이었어요.』
『정원은 좁지만 사과·살구·감·대추나무를 내가 다 심었지.』『향기나는 나무보다 이렇게 「결실」을 볼 수 있는 나무가 좋아.』
-앞으로 진정한 국민화합을 위한 「결실」 이 이뤄져야할텐데요.
『복잡하게 생각하지 맙시다. 최선을 다합시다. 이웃·사회·나라를 외해 최선을 다하는겁니다. 민주주의하는데 껄끄럽다고 잡아들일수도 없는 것 아닙니까. 민주주의하자면 끈질기게 「이해」시키고 「대화」하자고 할수밖에 없습니다』
-후보로 지명되시기까지 얘기도 많았던것 같습니다만….
『강한 주장, 서슴없는 주장을 용기라고 하지만 「참는것」도 이에 못지않은 용기입니다. 역시 민주주의를 하려면 모든 얘기를 들어야합니다. 「경청」의 자세가 갖춰져야지요.』
노대표는 얘기를 젊은 층으로 돌렸다.
『젊은층에 「뉴 레프튼 사조가 인기가 있는데 서양에서는 이미 극복했읍니다. 2000년대 새로운 주인공이 되려면 빨리 극복해야합니다. 늦게 극복하면 따라가지 못합니다.』
『우리나라 사람은 머리가 우수하지요. 대신 상대방을 쉽게 인정하지 않지요. 어떤 면에서는 단점이고 또 강점이 될 수 있겠지요』
노대표는 언론관을 잠시 피력했다.
『언론의 코치·지도를 받고 이 나라를 이끌어 가는겁니다. 언론을 통제하는 것이 아닌, 언론이 기꺼이 이끌어주길 바라는 것이 내가 말하는 언론관입니다.』
기자들에게 맥주를 계속 권하면서 평소에도 흥이 날 때면 애송한다는 홍사용시인의 시를 거의 끝까지 읊조렸다.
『옛날 사관학교시절에는 「헤르만·헤세」의 시를 다 외었었지…』라고 말한 노대표는『군인이 「권위적」「명령적」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30년 군생활을 「예술」로 생각했어요. 생과 사의 극단을 잇는 드릴만점이지. 그야말로「예술의 극치」「기찬 예술」그것이야.』
『내가 소대장시절 소대원 중에는 대학원생부터 무식꾼까지 있었어요. 이 다양한 집단을 어떻게 이끌면서 그들이 심복토록 할것인가를 생각했지. 털어놓고 얘기하면「명령이 아닌 대화」가 되고, 그러면 「하머니」가 이루어졌어요. 각계각층에서 온 이들의 모든 생명을 내가 맡아 갖고 있으니 이들이 공통분모를 갖도록 노력하고 공부 해야한다는 것이었지.』
노대표는 『법규와 규율이 아닌 「인간관계의 오묘한 예술」이라는 생각으로 살아왔다』 고 했다.
-많은 사람이 기대를 갖고 있는데요.
『다같이 해야지요』 라고 겸손해 한다.
-앞으로 대표위원실 출입이 더 어렵게 되는 것 아닙니까.
『왜 더 쉽지. 그렇게 생각하지 마시오.』
노대표는 그러면서 『이제 건강해야지』라고 했다.

<박보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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