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방일 푸틴, "일본과는 영토 문제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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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5, 16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방영토(쿠릴 4개섬) 일본 반환 문제에 강경 입장을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14일 공개된 일본 요미우리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4개섬을 둘러싼) 영토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러시아와 영토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일본 뿐”이라고 말했다. 이는 4개섬의 영유권 분쟁 자체를 부정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 러시아는 옛 소련이 1945년 점령한 쿠릴열도의 하보마이(齒舞)ㆍ시코탄(色丹)ㆍ구나시리(國後)ㆍ에토로후(擇捉) 4개섬을 실효 지배하고 있다.

푸틴은 이어 “(1956년의) 소련ㆍ일본 공동선언은 2개섬(하보마이ㆍ시코탄)의 반환을 언급하고 있다”며 4개섬 전체의 반환을 요구하는 일본의 주장은 “공동선언의 틀을 넘어서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공동선언에서 2개섬 반환의 조건으로 명시한 양국간 평화조약 체결에 대해선 “일본의 대러시아 제재가 평화조약 체결 교섭과 경제협력의 진전을 방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에 일본이 동참하고 있는데 대해 불쾌감을 표시한 것으로 보인다. 푸틴은 아베가 제안한 일본의 대러시아 8개항목 경제협력에 대해 “(2개섬 반환과 관련한) 평화조약 체결의 조건이 아니라 분위기 조성용”이라고 밝혀 영토 문제 타결과는 거리가 있다는 뜻을 드러냈다. 4개섬에서의 양국간 공동경제활동에 대해서도 “러시아의 주권 하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푸틴의 회견은 양국간 경제협력과 공동 경제활동을 통해 영토반환 교섭의 토대를 마련한 뒤 평화조약을 체결하고 하보마이ㆍ시코탄의 2개섬 반환으로 영토 문제를 최종적으로 해결하겠다는 것으로 정리된다. 이는 4개섬의 일본 귀속을 확인한 뒤 경제협력을 통해 2개섬 선(先) 반환+α(알파)를 끌어내려던 일본 정부에 찬물을 끼얹는 내용이다. 당초 일본에선 두 정상이 영토 문제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경제 협력에 합의하면서 큰 기대가 일었다. 아베가 이번 정상회의 합의 결과에 대한 국민의 신임을 묻기 위해 내년 초 중의원을 해산할 것이라는 관측도 적잖았다. 푸틴의 이번 회견으로 낙관론이 쑥 들어간 분위기다.

더구나 푸틴은 이번 회견에서 일본의 러시아 제재 문제를 새로 들고나왔다. 주요 7개국(G7)의 제재망을 헝클어보겠다는 속셈이다. 하지만 올해 G7 의장국으로 결속을 강조해온 일본이 제재 대열에서 이탈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관방장관은 13일 회견에서 “G7과의 연대를 중시해나가면서 적절히 대응하겠다”고 말해 제재 해제에 부정적 입장을 나타냈다. 푸틴이 러시아 주권 하의 공동경제활동을 주장한데 대해서도 “(4개섬이 일본 영토라는) 법적 입장을 해치지 않는 것이 대전제”라고 밝혔다. 푸틴의 강경 입장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과 맞물려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트럼프가 러시아와의 관계개선을 시도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대일 접근의 필요성이 줄었다는 지적이다.

러일간 입장 차이에 따라 정상회담 뒤 공동성명이 나올지는 불투명해졌다. 러시아 외교부 간부는 아사히 신문에 평화조약 체결을 향한 양국간 결의와 방침 등을 담은 공동성명이 채택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일본 정부도 공동성명을 단념하는 방향이라고 아사히는 전했다.

도쿄=오영환 특파원 hwas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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