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트기직전이 가장 어둡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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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민심이 흉흉하다』 는 말이 요즈음처럼 실감이 나는 때도 드물었던 성싶다.
지난 한두 달 사이에 모르긴 모르되 적지 않은 사람들이 똑같은 증세-신문만 퍼들면 속이 메스껍고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터지는 듯한-그런 병명도 모르고 처방도 없는 증세로 고생이 막심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용팔이는 어디로 갔나? 이 삭막한 도시의 아스팔트 위로 훌연히 각목과 쇠파이프로 무장한용사들을 거느리고 전설처럼 나타난 용팔이. 그 건장한 청년들이 백주에 숱한 경찰병력이 포진하고 있는 한가운데서 시민들과 신당 지구당원들을 상대로 각목과 쇠파이프를 휘둘러대며 한껏 몸을 푼 후에 유유히 사라져갔을 때, 우리는 빛바랜 사진처럼 아득한 세월 너머로 가물거리는 옛 이야기들, 자유당·백골단· 땃벌떼· 『백주의 테러는 테러가 아니다』 …이런 어휘와 관련된 연상들이 뜻하지 않게 뇌리에 되살아 나는 것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한국의 정당정치사에 큼직한 족적을 남긴 용팔이, 내무장관이 애타게 찾고 있다는 그 용팔이는 대체 어디로 사라졌길래 이 봄이다가도록 일자소식이 없나.
용팔이가 실종된 것보다 더욱 답답한 일은 지난 1년간 전국민의 관심과 열의를 모아가며 온 나라를 들끓게 하던 개헌논의가 하루아침에 거짓말처럼 실종된 일이다. 이런 일도 일어날수 있으리라고는 차마 예상하지 못했다. 내각책임제가 옳으니, 대통령제가 옳으니 하던 그 동안의 개헌논의가 지금 생각하면 속절없을 뿐이다.
이렇게 하여 합의 개헌의 무대는 간단히 철거되고 한동안 뜸했던『법대로!』 의 구⇒♀가 다시 전면에 등장했다. 야당 국회의원들이 잇달아 구구 각색의 죄명으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고, 일간신문의 정치면 정당관련 기사에 「검찰」 이니 「소환」이니 「국가모독죄」니 「국가보안법」 이니 하는 용어들이 또다시 빈번히 나타나게 되었다. 마치 여당이 아니라 검찰이 야당의 정치적 맞수 인 것 같은 착각이 일어날 지경이다.
정치인들의 발언이 정치적으로 타당하냐 아니냐, 국민의 뜻을 대변하느냐 아니냐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형벌법규에 접촉되느냐 안되냐의 관점에서 1자1구에 이르기까지, 아니 행간의 숨은 뜻에 이르기까지 면밀히 분석·검토되기 시작했다. 이런 것이 우리의 「법치주의」 라고 한다면 너무나 서글픈 이야기다.
심지어 어떤 신문의 논설에서『만사를 「법대로」 만 할 것이 아니라 「상식과 정도」 에 따라야 할 것』 이라는 주장을 편 것을 읽으며 가슴이 콱 막히는 듯한 답답함을 느꼈다. 「법대로」라는 말이 「상식과 정도에 따르는 것」의 반대되는 의미로 사용되다니!
법이란 원래 상식과 정도에 따라야 하는 것인데.
「상식과 정도」 에 어긋나는 법은 법의 곁 모습만 갖추었을 뿐 기실 법이 아니며 법의 반대물인것이다.
가뜩이나 울적한 심사만 쌓여가는 데 불난 집에 부채질하듯 『현대자동차 수준에도 못미치는 한국의 정치』 라는 외신의 평가가 바람결을 타고 전해졌다. 50년대말의 「쓰레기통의 장미꽃」논보다 덜 모욕적으로 들릴지 모르나 창피스럽기는 매일반이다. 현대자동차를 만들어낸 것을 보면 분명히 저력이 있는 개명한 민족임에 틀림없는데 정치는 어째서 그 모양인가. 외국사람들이 이런 의문을 가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사태의전부일까.용팔이,각목,국가모독죄 논쟁, 이런 것들이 「한국정치」의 전부인가. 「한국정치」 라는 자동차는 전혀 희망이 없는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한국정치」 라는 자동차의 원동기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 매우 튼튼하다. 몇 가지 부품들이 잘못되어 있을 뿐이다. 무엇을 보고 이렇게 말하는가.
작금 각계각층에서 표출되고 있는 우리 국민들의 민주역량, 물처럼 유연하면서도 스미지 않는 곳이 없어 마침내 모든 장벽을 허물고 제갈 길을 가고야 말 것을 예감케 하는 우리 국민의 힘, 그것을 믿기 때문이다. 작년의 개헌서명에 참여한 교수들이 그후 당했던 갖가지 불이익을 고려한다면 13일 현재 전국의 시국선언 서명교수가 작년의 수준을 훨씬 넘어선 43개 대학 1천3백80명에 달했다는 신문보도는 어찌 보면 하나의 기적 같기도 하다.
이 대열에 대학교수와 성직자들만이 아니라 대학원생들·문인들· 연극인들· 화가들· 영화인들까지도 대거 참여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새로운 시대를 향한 역사의 도도한 흐름을 실감한다. 특히 충격적이었던 것은 금융노조 산하 몇몇 조합이 대한노총의 호헌지지 성명을 자기들의 뜻이 아니라고 반박하고 나선 일이었다. 대기업에 소속된 봉급생활자들로서 이른바 「보통 사람들」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는 은행원들이 보여준 이 같은 시민적 용기는 『현대 자동차를 만들어낸』바로 그 한국 민들의 높은 정치적 수준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하겠다.
박해를 각오하고 발언 할 수 있는 국민은 민주주의를 하기에 필요·충분한 자격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요사이 얼마 동안의 우울한 일들에만 사로잡혀 지나치게 낙담할 것은 없다. 원래 동트기 직전이 가장 어두운 법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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