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하나의 중국 원칙에 얽매여야 하는지 모르겠다"

중앙일보

입력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 의혹과 관련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 측과 의회 중진과의 신경전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존 메케인 상원 군사위원장, 공화당 경선 후보였던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 등 공화당 중진 2명과 척 슈머(뉴욕) 차기 상원 민주당 원내대표, 잭 리드(로드아일랜드) 상원의원 등 민주당 중진 2명 등 4명의 상원의원은 11일 오전 긴급 공동 성명을 발표하고 " 러시아의 대선 개입 문제는 초당파적인 문제"라며 "러시아가 해킹을 통해 개입한 의혹에 대해 공화·민주 양당이 의회에서 전면조사를 실시해 철저하게 밝혀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의 성명은 전날 워싱턴포스트가 "미 중앙정보국(CIA)은 트럼프의 승리를 돕기 위해 러시아 정부가 조직적으로 미 대선에 개입했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보도한 데 따른 것이다. 매케인 등은 트럼프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친분이 깊은 엑손모빌 최고경영자(CEO) 렉스 틸러슨을 차기 국무장관으로 지명하려는 움직임도 강하게 반발했다.

트럼프는 이들의 움직임이 자신의 당선을 부정하려는 것이라며 격하게 비난하고 나섰다. 그는 이날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개입한) 그런 일이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이를 문제 삼는 건) 우스꽝스런 이야기이며 대선에서 패배한 민주당 측의 또 다른 변명"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또 "해킹이라는 문제는 흥미가 있지만 (누구 소행인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 아니냐"며 "러시아가 그랬는지 중국이 그랬는지 혹은 어딘가 침대에 앉아 있는 누군가가 그랬는지 알 수 없는 일"이라고 일축했다.

트럼프는 인터뷰에서 중국에 대한 기존 정책을 뒤흔들 수 있음을 내비쳤다. 1979년 대만과 단교한 이후 37년 동안 고수해 온 '하나의 중국' 정책을 대중 무역문제, 북핵 문제 등 현안과 연계할 수 있다는 입장을 강조한 것이다.

그는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과의 전화 통화가 수주 간의 생각 끝에 나온 것이라는 얘기가 있다"는 질문에 "다 틀린 얘기다. 수주가 아니다"고 일축하면서 "전화가 걸려올 것이라는 사실을 한두 시간 전에 알았다"고 강조했다. 차이 총통과의 통화를 오랫동안 치밀하게 준비한 게 아니란 점을 강조한 것이다. 다만 그는 중국의 태도를 작심한 듯 비난했다.

트럼프는 "난 '하나의 중국' 원칙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지만 무역 문제를 포함해 다른 사안들과 관련한 협상을 하지 않는다면 왜 우리가 하나의 중국 정책에 얽매여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우리는 중국의 위안화 평가 절하와 (미국산 제품에 대한) 고율의 관세 부과, 남중국해 대형 요새(인공섬) 건설로 피해를 보고 있는데 중국은 이런 것들을 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또 "솔직히 중국은 북한과 관련해 우리를 전혀 안 도와주고 있다"며 "북한이 핵무기를 갖고 있고 중국이 그 문제를 풀 수 있는데 그들은 전혀 도와주지 않는다"며 북핵 문제까지 거론했다.

중국이 미국에 협조하지 않으면 미국 역시 중국이 가장 민감해 하는 '하나의 중국' 정책을 더 이상 고수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경고 메시지를 중국에 보낸 것이다.

트럼프 특유의 '협상술'에 따른 발언일 공산이 크지만 실제 트럼프가 이런 구상을 본심이건 아니건 실행에 옮길 경우 미·중 관계가 극한 상황으로 전개되며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 정세가 새로운 냉전 상황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의 초대 국무부 부장관에 친 대만 인사인 존 볼턴 전 유엔대사가 포진될 경우 역시 친 대만파인 라인스 프리버스 백악관 비서실장과 더불어 중국과 한판 대결도 불사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 볼턴은 올 1월 월스트리트저널 기고문에서 "새 행정부는 대만 외교관 수용→대만 총통 방미 허용→완전한 외교관계 복원이란 단계적 로드맵을 실시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 바 있다.

워싱턴=김현기 특파원 luc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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