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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정국 증시 ‘그때’와 다른 점 셋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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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2004년 3월 12일 코스피는 2.43% 급락했다. 이후 헌법재판소의 기각 결정이 내려진 5월 14일까지 63일 동안 코스피는 11.7% 하락했다. 당시 대통령 탄핵 정국은 금융시장에 큰 악재였다. 지난 9일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안이 가결되자 일각에서 ‘2004년 재현론’을 걱정하는 건 이런 과거의 악몽 때문이었다.

가결~헌재 결정 주가 흐름은…
① 상장사 순익 등 실적 좋고
② 배당 규모도 5년 중 최대
③ 외국인 여전히 “한국 사자”
“금융시장 영향 제한적” 전망
일부선 당시처럼 하락 우려도

당시 상황을 제대로 곱씹어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탄핵안이 가결되고 다음 일주일(2004년 3월 15~19일) 동안 코스피는 3.65% 상승해 탄핵안 발의 직전(8일) 수준을 거의 회복했다. 이후로도 꾸준히 상승해 헌재의 심리가 한창 진행 중이던 4월 23일엔 936.06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게 연중 최고치였다.

자료:하나금융투자·와이즈에프엔·한국거래소

자료:하나금융투자·와이즈에프엔·한국거래소

그러다 4월 말 급락해 5월 중순 700 초반까지 밀렸다. 급락의 주원인은 중국 정부가 긴축정책을 시사하는 발언을 연이어 내놓은 탓이었다. 당시 외국인 투자자는 4월 29~30일 이틀간 코스피 시장에서 무려 1조4872억원을 순매도했다. 총 거래대금의 20%를 넘는 규모다. 미국 금리인상과 맞물려 선물시장이 크게 요동친 것도 악영향을 주었다. 이런 분석을 종합하면 ‘탄핵’이 주가 하락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건 사실이지만 핵심 이슈라고 해석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뜻이다.

이 때문인지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안을 통과시킨 이후에도 금융투자 업계의 반응은 차분하다. 코스피의 폭락은 없을 것이고, 설사 충격을 받더라도 단기간에 끝날 것이란 견해가 우세하다. 이종우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예단할 수 없어 불확실성이 사라진 건 아니지만 당장 금융시장이 크게 출렁일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일단 기업 펀더멘털(기초체력)이 나쁘지 않다는 평가다. 지기호 LIG투자증권 리서치본부장은 “정치 이슈보다 실적이 더 중요하다”며 “상장사의 순이익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할 것으로 보이고, 12월 배당 규모 역시 최근 5년 중 가장 크다”고 말했다. 실제로 삼성전자·현대차 등 코스피200에 속한 기업의 올해 연말 배당금은 약 20조원으로 지난해(18조398억원)보다 약 9%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지난해 22% 수준이던 배당성향(당기순이익 중 현금 배당금의 비중)도 24%로 높아질 전망이다. 하락 요인(탄핵)이 단기 이슈인 반면 상승 요인(실적 회복과 주주가치 제고)은 중장기적 호재라는 설명이다.

자료:하나금융투자·와이즈에프엔·한국거래소

자료:하나금융투자·와이즈에프엔·한국거래소

전반적인 안정감도 2004년과 다른 점이다. 일단 수급에 큰 문제가 없다. 최근 한 달간 외국인은 코스피 시장에서 6559억원을 순매수했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가 국내에 정치·사회적으로 미친 영향을 감안하면 주식시장이 받은 충격은 의외로 미미했다고 볼 수 있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외국인을 비롯한 대부분의 투자자가 현재 주가 수준이나 한국의 미래에 대해 낙관적인 견해를 견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로 한국 증시의 오랜 디스카운트 요인 중 하나인 정경유착과 같은 취약점을 해소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돼 장기적으로 호재라는 관점도 나온다. 다만 특별검사 수사로 주요 대기업의 연루 사실이 추가로 드러날 경우 시장에 충격을 줄 수 있다. 탄핵소추안 ‘부결’ 리스크가 사라진 것도 다행스러운 점이다. 이 센터장은 “부결됐다면 행정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국회까지 마비돼 충격이 작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의 반응은 비교적 차분했다. 9일(현지시간) 뉴욕 역외차액결제선물환(NDF) 시장에서 원화가치는 달러당 1174.15원으로 전날보다 0.9% 하락하는 데 그쳤다. 10년 물 외국환평형기금채권 금리는 0.06%포인트 상승한 2.63%를 기록했다. 이는 국내 정치상황보다는 달러화 강세와 미국 국채금리 상승의 영향으로 분석된다.

한국 외평채 5년 물의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9일 0.4278%포인트로 한 달 전에 비해 오히려 0.037%포인트 낮아졌다. CDS 프리미엄은 채권이 부도날 경우를 대비해 지급하는 일종의 보험료다. CDS 프리미엄이 낮아졌다는 것은 그만큼 국가 부도 위험이 줄었다는 의미다.

JP모건은 “과거 한국 경제가 국내 정치상황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았던 점을 볼 때 이번 탄핵 결정의 영향도 제한적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11일 “금융시장이 과도하게 변동하는 경우 시장안정 조치를 즉시 시행하겠다”고 말했다.

한애란·장원석·심새롬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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