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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여야, 대선 꼼수 접고 국정안정에 힘 모으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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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론이 나오고 조기 대선이 치러지기까지 길게는 8개월간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가 가동된다. 황교안 총리가 박 대통령의 권한을 대신해 내치·외교 를 총괄하는 것이다. 이 기간 중 대한민국이 전대미문의 국정 위기를 극복하고 재도약의 전기를 마련할지, 아니면 혼란만 가중되면서 나락으로 추락할 것인지는 정치권이 하기에 달려 있다.

헌정위기에도 당권·대선에만 골몰
나라부터 안정시켜야 수권할 자격
여·야·정 협의체 조속히 출범시키길

한데 여야 정치권은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하자마자 대선을 겨냥한 정쟁에 골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새누리당은 친박계 이정현 대표가 탄핵안 가결에도 불구하고 버티기로 일관하며 비대위 구성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의중을 드러내고, 반발한 비박계가 독자 비대위 구성 논의에 들어가는 등 내전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집권당으로서 책임을 통감하고 국정공백 최소화에 전력을 기울여도 부족한 마당에 당 주도권을 놓고 내분만 가열되고 있으니 더 이상 실망할 구석도 찾기 어렵다.

더불어민주당도 문재인 전 대표가 탄핵 가결 직후 박 대통령의 즉각하야를 요구하고, 추미애 대표가 “황 총리도 탄핵감”이라 주장하는 등 나라는 안중에 없고 조기 대선에만 눈이 먼 노골적인 모양새다. 당 지도부가 이런 비판을 받아들여 “황 총리 체제를 지켜보겠다”고 물러서긴 했지만 안희정 충남지사·이재명 성남시장 등 당내 잠룡들이 속속 대선 출마 의사를 밝히면서 민주당의 ‘조기 하야’ 요구는 언제든 재연될 개연성이 있다. 국민의당 역시 탄핵안 가결 직후 김동철 비대위원장이 박 대통령의 즉시 퇴진을 요구하고 황 총리 체제에 거부감을 표시하며 조기 대선 욕심을 드러낸 바 있다.

대한민국이 초유의 위기를 맞은 지금 정치권의 급선무는 때이른 대선 레이스 시동이 아니다. 황 총리 대행체제를 도와 국정이 안정을 회복하도록 힘을 보태 주는 노력이 절실하다. 그래야 대선도 제대로 치러져 당선인이 정통성을 가질 수 있다. 특히 최순실 게이트 이후 두 달 가까이 방치되다시피 한 경제는 초당적 대처가 시급한 핵심 과제다. 가계부채가 1300조원을 넘고 수출·투자·소비가 위축되며 곳곳에서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안보 역시 상황이 엄중하다. 특히 내년 1월 20일 취임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의 조기 정상회담이 이뤄지기 어려운 상황은 권한대행 체제의 가장 큰 리스크다.

두 야당이 이런 지적들을 받아들여 지난 주말을 고비로 민생모드를 염두에 둔 ‘여·야·정 협의체’ 구성을 제안한 건 그나마 다행이다. 새누리당은 즉각 내분을 멈추고 이에 호응해야 한다. 당장 12일 열릴 3당 원내대표 회동에서 논의를 개시해 조속히 협의체를 출범시켜야 할 것이다. 12일부터 30일간 소집될 임시국회 역시 경제·외교·민생이 핵심의제가 돼야 한다.

대통령이 식물상태인 가운데 국정의 주축이 된 정치권 역할의 중요성은 재론할 필요조차 없다. 특히 정국의 주도권을 쥔 거대 야당의 역할이 핵심이다. 이제는 탄핵 투쟁을 넘어 나라를 안정적으로 이끄는 모습을 보이고, 대안을 제시해야만 수권정당 자격을 인정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