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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대구 새론중학교의 ‘방한 교복 실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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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윤호 기자 중앙일보 대구총국장
김윤호 내셔널부 기자

김윤호
내셔널부 기자

한파가 닥치면 청소년들 사이에서 패딩 인기가 열병처럼 번진다. 캐나다XX·몽클XX 브랜드를 청소년들은 합쳐서 ‘캐몽’이라고 부른다. 한 벌당 수백만원을 호가한다. 수십만원짜리 노스XXX·데XX 같은 스포츠 브랜드 패딩도 단골 고객이 적잖다.

비싼 패딩을 갖고 싶어 하는 청소년들은 겨울만 되면 ‘패딩앓이’를 한다. 그만큼 학부모들의 부담은 커진다. 고가 패딩이 부모의 등골을 휘게 한다고 해서 ‘등골 브레이커’로 불릴 정도다.

학생들은 그래도 “교복만으로는 한겨울에 보온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며 부모를 조른다.

그러니 겨울만 되면 학부모들은 겁이 난다. 패딩을 못 입어 아이가 학교에서 왕따가 되지 않을지, 패딩 때문에 학교폭력에 연루되지 않을지 이래저래 걱정이 많다.

2011년 12월 부산에서 중학생 박모(15)군 등 5명이 브랜드 패딩을 갖고 싶어 길 가던 김모(13)군을 골목으로 끌고 가 마구 때리고 패딩을 빼앗았다. 같은 달 20일 집단 괴롭힘을 견디지 못하고 대구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중학생 김모(14)군도 괴롭힘을 당하면서 패딩을 빼앗겼다.

대구 새론중학교 시청각실에서 학생들이 방한용 패딩과 재킷을 입고 활짝 웃고 있다. [대구 새론중]

대구 새론중학교 시청각실에서 학생들이 방한용 패딩과 재킷을 입고 활짝 웃고 있다. [대구 새론중]

요즘 대구시 동구 혁신도시에 있는 새론중학교(전교생 272명)가 이색적인 ‘방한 교복 실험’으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달 학생들이 교복과 같이 입을 수 있는 방한용 겉옷 두 종류를 자체 디자인해 출시했다. 오리털 소재로 된 패딩과 폴리에스테르로 만든 청색 재킷이다. 손태복(60·여) 교장이 아이디어를 냈다. 사춘기에 비싼 패딩을 교복 위에 걸쳐 입으면 다른 학생들에게 위화감을 줄 수 있고 ‘패딩 빼앗기’의 학교폭력을 예방하기 위해서였다.

지난 8월 방한 패딩 제작을 위해 10명의 학부모와 교직원 등으로 구성된 선정위원회를 꾸렸다. 학교 밖에서도 당당하게 학생들이 입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디자인의 핵심 콘셉트였다. 최종 모델 2종은 학교명을 최대한 노출하지 않았고, 브랜드 패딩처럼 허리선을 잘록하게 집어넣고 허리 아래까지 기장이 내려오는 최신 스타일이다.

재킷 역시 학교 밖에서도 입을 수 있게 학교명을 영어로 작게 처리했다. 공개 입찰을 통해 제일 저렴한 가격을 제시한 업체를 선정했다. 패딩은 11만5000원, 재킷은 1만5000원으로 결정됐다. 학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272명 중 재킷은 212명이, 패딩까지 같이 구입한 학생도 71명이다.

이런 실험 덕분인지 새론중에는 패딩 빼앗기도, 비싼 패딩 순위를 매기는 ‘패딩 계급도’도 없어졌다. 새론중은 이 신선한 성공 사례를 19일 발표할 예정이다.

김 윤 호
내셔널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