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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촛불 현장에서 혼쭐난 야당 정치인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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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최경호 내셔널부 기자

최경호
내셔널부 기자

지난 3일 오후 6시 대구시 중구 한일로. 촛불집회장 곳곳에서 “안철수 빠져라”는 고함이 터져 나왔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대표를 발견한 시민들의 성난 목소리였다. 시민들은 촛불집회 전날인 2일 ‘탄핵안 처리 불가’ 입장을 밝힌 국민의당에 대한 비난을 안 전 대표에게 쏟아냈다. 일부 시민은 안 전 대표 앞에 마주 서 “나가라” “욕심내지 말라”며 항의했다. 이를 지켜보던 집회 사회자는 “광장의 주인은 안철수 의원이 아니라 대구 시민”이라고 외쳤다. “국민의당은 흔들리지 말고 박근혜를 탄핵하라”는 촉구가 이어졌다. 침통한 안 전 대표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절차가 지연되면서 민심의 분노가 야권으로도 번지고 있다. 국가 위기 상황에서 볼썽사나운 친박과 비박 다툼이 한창인 새누리당은 그렇다 치더라도 탄핵을 앞두고 우왕좌왕하는 야권을 보는 국민 불만이 점차 커져가고 있다.

각종 집회 현장에선 “탄핵을 지체시킬 경우 지난 총선에서 여소야대를 만들어 국정의 주도권을 쥐게 해 준 야당도 결코 용서하지 않겠다”는 경고가 들린다.

시민들은 촛불집회에 나타난 야권의 유력 정치인들이 단상에 올라 발언하는 것조차 거부하며 실망감을 표출했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지난 3일 오후 7시30분쯤 광주광역시 옛 전남도청 앞. 당초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측은 이날 ‘2분 자유발언’을 신청했으나 주최 측이 이를 거부했다. “탄핵을 지연시킨 정치인들에게 발언 기회를 줄 수 없다”는 이유였다.

결국 사회자가 단상 앞에 앉아 있던 문 전 대표를 일으켜 세웠다. 문 전 대표는 2분이 아니라 단 몇 마디밖에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지난 2일 야 3당이 약속했던 탄핵 의결을 하지 못해 죄송하다. 탄핵안을 9일 처리하기로 합의했다”는 사죄 발언이 전부였다.

안희정 충남도지사 역시 이날 대전시 둔산동에서 열린 촛불집회에 참석해 ‘자유발언’을 요청했으나 거부당했다. “시민들의 행사에 정치인이 발언하는 것은 취지에 맞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안 지사는 결국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

집회 현장에서 유력 정치인들까지 따돌림 당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민심을 정확히 파악해 국민의 걱정을 덜어줄 시국 해법을 내놓기는커녕 당리당략에 매몰돼 허둥대고 있다고 국민이 여기기 때문이다.

광주지역 촛불집회를 이끌어온 최영태 전남대(사학과) 교수는 “이제라도 정치권이 박 대통령 탄핵은 물론이고 그 이후의 국정 수습 방안까지 제대로 내놓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최 경 호
내셔널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