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양사건」검찰수사 안팎|한사장 "언젠가는 사실 밝히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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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27일 상오10시20분 구속영장을 발부받은 검찰은 15층에 대기시켰던 한사장을 수사관 4명이 호송, 승용차편으로 서울구치소에 곧바로 수감.
한사장은 『지금으로서는 할말이 없다. 다만 물의를 일으켜 죄송할 뿐』이라고 비교적 담담한 어조로 답변.
한사장은 또 박회장의 유서내용 및 여론의 비난에 대해서는 『모든 것을 나중에 얘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답하고 『각별한 원망과 미움같은 것은 없다』고 누구를 지칭하지 않은 채 답변.
지친 모습에 울먹여
○…한사장은 수감당시 베이지색 점퍼에 갈색무늬 Y셔츠차림으로 지친 표정.
한사장은 보도진이 호송하는 수사관과 몸싸움을 벌이며 질문을 계속 퍼붓자 『더이상 무슨 할말이 있겠는가』고 울먹였다.
○…한사장은 『범죄사실을 모두 시인했느냐』고 묻자 『현재 검찰에서 조사중인 것으로 안다』고만 대답해 『부인했다는 뜻이냐』고 재차 질문하자 『충분한 사실관계는 조사가 더 되어야 밝혀질 것』이라고 말해 일부혐의사실을 부인하고 있는 듯한 인상.
5분만에 영장을 접수
○…한사장에 대한 구속영장은 27일 상오9시8분쯤 서울지검특수1부 이승구 검사가 직접 기록 등을 들고 서울형사지방법원 영장계를 거쳐 합의9부 김희근 판사에게 청구.
이검사는 이에 앞서 상오9시쯤 특수1부 김태정 부장검사로부터 문영호 검사가 서명한 한사장의 구속영장과 그동안 수사기록 일체를 건네 받아 수사관 2경과 함께 법원으로 직행.
이검사는 법원 영장계에서 약5분 동안 영장접수에 필요한 수속을 마친뒤 곧바로 626호 김판사사무실로 들어가 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은 한사장에 대한 구속영장청구때 5㎝두께의 수사기록을 첨부.
이 기록 첫페이지에는 「범양상선사건」이라는 표제 아래 고 박회장과 한사장을 같은 피의자로 적어놓았으며, 다음페이지에는 국세청장이 서울지검장 앞으로 보낸 두 사람에 대한 고발장이 첨부돼 있다.
"도피액 줄어들수도"
○…한사장에 대한 수사는 26일 하오10시40분쯤 김태정 특수1부장이 청사에 합류하여 영장문안 작성 등 마무리작업을 시작.
검은색 서류가방을 든 김부장검사는 그 동안의 수사에 대해 『밝혀진 도피액이 1천6백44만달러』라며 최종 확인 과정에서 79만달러가 줄어들수도 있다고 설명.
김부장검사는 이어 27일 상오9시쯤 영장을 청구해 상오10시쯤 국세청의 조사발표와 동시에 구속수감할 것이라고 귀뜀한 뒤 『한사장 수감후 관계자들에 대한 수사가본격화될 것』이라고 말해 구속자가 더 있을 것임을 암시.
○…검찰에서는 한사장이 피의자 신분으로, 박회장 사위 김철영씨와 부사장 조영시씨(현 사장)등 관계자 7명이 참고인으로 3군데에 분산돼 조사받았는데 김영선 전무·손홍락씨 등 관계자 4명은 시내 모 호텔에서 조사받은 후 26일 낮 모두 귀가.
검찰은 조부사장·김철영씨 등으로부터 피의자 및 참고인진술을 동시에 받았다고 설명해 이들도 형사처벌대상임을 암시.
수사팀 중 배재욱 검사는 한사장이 『몇년 전의 통계숫자에 상황까지 정확히 기억하고 있더라』면서 『그는 컴퓨터 같은 인물』이라고 혀를 내두르기도.
식사찰하고 잠도 잘자
○…한사장은 검찰에서 조사받는 동안 상당히 지친 듯 초췌한 모습에 수사팀의 추궁에 순순히 범행사실을 시인, 비교적 순탄하게 수사가 끝났다는 후문.
한 수사관은 『한사장이 모든것을 체념한 듯 식사는 끼니마다 잘 먹고 간이침대에서 잠도 잘 자더라』고 전하고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불안해했으나 한사장은 침착하고 대담한 자세가 역시 사장답더라고 말하기도.
15층의 조사실은 난방이 제대로 안돼 전기히터를 틀고 추위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으나 26일 하오9시30분쯤 한사장의 운전기사가 여행가방 2개에 속옷·털조끼·재킷 등 두꺼운 옷을 가져다주었다.
○…검찰은 27일 한사장을 구속한 뒤 추가로 2∼3명정도가 형사처벌 대상임을 시사.
한 관계자는 『재산 도피가 박회장·한사장 손에서 이뤄진 것이지만 관계된 극소수의 측근들이 있었다』고 말하고 『이 측근들은 반대급부를 받은 부분이 별로 드러나지 않아 구속여부는 미지수』라고 설명.
이 관계자는 이들에 대한처벌여부는 『실정법상 공범임에는 틀림없으나 처벌여부는 수사가 더 진행된 뒤 상부에서 결정할 것』이라고 말해 유동적임을 밝혔다.
액수틀려 수시로 대조
○…한사장에 대한 적용법조는 조세범처벌법(탈세부분)·특정경제법죄가중처벌법(재산해외도피)·횡령·외환관리법위반 등으로 도피액수 산정에 검찰과 국세청 측이 서로 엇갈려 검찰은 수시로 조사사실을 대조해가며 숫자를 맞추기도.
이는 국세청이 「주정」을 원칙으로 한 반면 검찰은 명백한 공소유지가 가능한 「사실」만 따지기 때문으로 26일 상오에도 한 수사검사는 『1천5백만 달러를 밑돈다』고 말했으나 하오 10시30분쯤 다른 수사검사는 『몇 건이 더 늘어나 1천6백만 달러를 넘었다』고 밝히기도.
검찰의 한 관계자는 해외도피부분 중 국내에 돌아온 것이 횡령에 해당되기 때문에 횡령은 재산도피의 한 줄기라고 설명하고 기소 때에는 액수가 늘게 될 것 같다고 전망.
국세청·검찰 합동조사
○…국세청의 고발이 접수되면 수사에 착수하겠다고 연막을 피우던 검찰은 고발 사흘전인 24일부터 국세청 조사팀과 합류, 합동조사에 들어가 고발장 등을 검찰과 국세청이 함께 만들었다는 후문.
이에 대해 검찰관계자는 대규모 경제사범의 경우 예비지식이나 자료준비 없이 고발장만 접수하면 처음부터 수사를 다시 해야하므로 결국 국세청과 2중 일을 하게되고 그 만큼 신병처리도 늦어지기 때문에 효율적인 수사를 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설명.
장인대신 사위가 수난
○…한사장을 구속키로 한 검찰은 일요일인 26일 상오 국세청으로부터 한사장의 신병을 인수, 극비리에 검찰청사 15층 대검 중앙수사부 동쪽 맨 끝 방에서 구속영장·피의자조서작성 등 구속을 위한 마무리작업을 폈다.
이날 15층에는 한사장 외에도 박회장파로 알려진 조영시 현사장(당시부사장)과 자살한 박건석 회장의 사위 김철영씨도 참고인으로 소환돼 일부에서는 『장인대신 사위가 수난을 겪는게 아니냐』는 말이 나돌기도.
검찰과 국세청 합동조사반은 그 동안 평창동 O호텔, 영동 N호텔 등을 전전하며 한사장을 조사해 왔으나 범죄사실이 드러나 27일 상오 중 구속이 확실해지자 피의자 신병처리 시한에 무리가 없다고 보고 26일에는 한사장을 검찰청사로 데리고 왔다는 것.
조사실서 고함소리도
○…26일 하오 보도진을 따돌린 채 검찰청사 15층에서 한사장을 수사하던 검찰수사팀은 15층 복도에 잠입, 취재하던 보도진과 마주치자 대경실색, 상부에 보고하기에 바빠 검찰이 이 사건 보안에 얼마나 신경을 쓰고 있는가를 입증.
외부에 나가 조사를 지휘하던 김태정 부장검사는 보고를 받고 즉시 청사로 달려나와 『27일 상오9시에 구속영장을 신청해 석간신문제작에 전혀 지장이 없도록 하겠다』며 철수해 줄 것을 신신당부.
15층 복도에는 방안에서 조사관의 고함치는 소리도 들려 한사장이 범죄사실 중 무엇인가를 부인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처음엔 부인하다 자백
○…한사장은 당초 혐의내용을 부인하다 26일 상오 압수된 관계장부 등을 들이대자 체념한 듯 순순히 자백.
조사도중 한사장은 수사관이 건네준 음료수를 들면서 담담한 표정으로 소상하게 진술했다는 것.
보도진에 연막작전
○…25일 하오부터 서울 삼성동 뉴월드호텔515호와 517호실을 빌어 한사장과 박회장 사위 김철영씨(38·전 범양 관리담당상무)등 모두4명을 철야수사한 검찰은 저녁식사나 음료수까지도 외부에 주문치 않고 수사관들이 직접 사들여가는 등 철저한 보안.
26일 새벽 조사장소가 보도진들에게 노출되자 곧바로 옥상의 나이트클럽 비상구를 통해 한사장 등을 검찰청사15층 조사실로 빼돌린 뒤에도 호텔방문을 안으로 걸어 잠그고 계속 연막작전.
수사팀은 상오 8시50분쯤 체크아웃할 무렵 호텔방문을 열고 들이닥친 기자들에게 『봐라,한사장은 없지 않느냐』고 여유있는 표정들. <신성호·김용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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