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에서는] '대학 합병' 유인책 마련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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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최근 충남권에서 대학 합병을 위한 움직임이 매우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충남대와 천안공업대학이 합병을 위한 논의를 진행시켜온 줄 알았더니, 공주대와 한경대도 천안공업대학과의 합병을 추진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991년 이후부터 공주대와 예산농업전문대, 경상대와 통영수산전문대, 부산수산대와 부산공업대, 공주대와 공주문화대가 이미 통합된 적이 있기 때문에 이번에 합병이 성공적으로 이뤄지면 다섯번째 대학 합병이 되는 셈이다.

대학 합병과는 다르지만, 광주.전남지역에서는 이른바 연합대학 체제 구축이 추진되고 있다. 이 지역의 전남대.순천대.목포대.여수대.목포해양대 등 5개 국립대학 총장들이 7월 초순 연합대학 체제 구축을 위한 합의서에 서명한 것으로 보도됐다.

몇 해 전에는 대구.경북지역의 국립대학 총장들이 연합대학 체제 구축을 선언한 적이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더 이상의 진전은 없었다.

실현 여부는 지켜봐야 하겠지만, 대학 합병이나 대학 연합은 대학이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추진하는 자구책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말로는 지방대학들이 위기에 처해 있다고 떠들지만, 사실 대부분의 지방대학은 정부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아 발등의 불을 끄고자 하기는 하지만 골치 아픈 대학 간 합병이나 구조조정을 스스로 감행하는 데는 주저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최근 충남권 대학들이 보여준 '경쟁적'인 합병 시도는 남다른 데가 있다.

사실 요즘 지방의 적지 않은 대학들의 형편을 보면 합병이나 구조조정을 마다할 입장이 전혀 아니다. 정원 미충원은 일반화돼 있으며, 일단 입학하고서도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물론 지방대학이라 해서 위기의 수준과 내용이 다 같지는 않다.

개괄적으로 말한다면 대학의 소재지가 서울로부터 얼마나 떨어져 있는가, 대학이 속하는 지역사회가 대도시인가 중소도시인가, 그리고 설립 주체가 국립인가 사립인가에 따라 위기의 수준과 내용이 달라진다고 할 수 있다.

지방대학 위기의 실상과 그 원인은 분명하다. 수도권과 여타 지역 간의 불균형 발전이 극도로 심화돼 있는 데다 대학설립준칙주의로 인한 대학의 난립과 무분별한 정원확대로 대학 입학 정원이 고교졸업자 수를 초과하는 상황에 이르렀으니 수도권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중소도시의 사립대학부터 그 피해를 보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문제는 이러한 지방대학의 위기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정책이나 노력이 미흡하다는 것이다. 때마침 새 정부가 국정 과제의 하나로 추진하고 있는 국가균형발전은 지방대학의 위기를 해소할 수 있는 근본적인 정책이기는 하지만 그 실현에는 너무나 긴 시간이 소요된다.

지난 정부에서 의원입법으로 시도됐던 지방대학 육성을 위한 특별법 제정이 요즘 들어 다시 고개를 들고 있으나 법안의 핵심인 특별회계 설치와 인재할당제가 관철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이며, 설사 이 법이 시행된다고 하더라도 대학 정원 과다로 인한 정원 미충원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요컨대 지방대학의 위기를 근원적으로 해소하기 위해선 국가균형발전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너무 많은 대학과 너무 많은 입학 정원의 문제를 어떻게든 풀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점에서 최근 충남권에서 진행되고 있는 대학 합병 움직임은 매우 고무적이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앞으로 국립대학뿐 아니라 사립대학에 대해서도 대학 간 합병을 유도할 수 있는 유인책을 마련해야 한다.

난립된 대학 체제와 입학 정원을 그대로 둔 채 지방대학에 대한 재정적 지원을 확충해 본들 그 결과는 아마도 '밑빠진 독에 물붓기'로 끝나기 쉬울 것이다. 정부 당국은 물론 지방대학들도 깊게 생각해 볼 일이다.

박재묵 충남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