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조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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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민주화조치는 표면적으로 민주발전에 대한 국민적 요구와 관심에 부응하고 정부·여당의 의지를 과시하는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으나보다 큰 목적은 4·13조치의 개헌 논의 동결로 인한 정치의 공백을 메우려는데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있다.
개헌 유보에 따른 국민의 충격과 허탈감을 치유하고 무산된 민주발전 기대를 대체해주고 개헌정국의 대역을 수행하는데 민주화조치의 초점이 있는 것이다.
민정당의 한 당직자는 『4·13조치로 2·12총선이후 통상적 의미의 여야관계는 당분간 부활되기 힘들다』면서 민주발전조치가 곤 여백을 메워주고 국민의 정치발전에 대한 갈등을 해소시켜주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아울러 민정당은 민주발전조치에대한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이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면서 야당의 반격을 둔화시켜나가면 88년2월 정부이양까지 큰 무리없이 정치일정을 소화할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눈치다.
그러나 개헌유보로 인해 선거 부담이 없어진 탓인지 4·13조치이후 여권에서는 민주화조치의 구체적 내용과 실시시기에 대해 야당과 상대할 때보다 눈에 띄게 후퇴한듯한 자세가 도처에서 나타나는 심상찮은 분위기다.
정부·여당이 가장 역점을 두는 지방자치제 실시에 있어서도 당정간의 수많은 협의와 전국 순회의 공청회등을 거쳐 관계법안까지 국회에 내놓았으면서도 새삼 부분적인단계적 실시론, 정당추천제 폐지론등이 나오고 있고 이러다가는 약속대로 대통령임기내 실시가 과연 가능할지도 의심스런 느낌이다.
언론문제만 해도 그렇다. 한때 민정당 일각에선 기세 좋게 언기법 폐지론까지 나왔으나 어언 폐지가 개정이 되더니 이제 와서는 독소조항의 개정및 완화를 위한 협의체구성을 하겠다는 방침이 나오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지자제나 언기법이 문제가 된것이 어제 오늘도 아니고 이런 문제들을 개선한다는 여권의 민주화약속이 나온 것도 어제 오늘이 아닌데 새삼 이제와서 연구·검토와 협의를 해나가겠다는 것은 실망스런 자세가 아닐수 없다.
지자제의 경우 최근 다시 당정간 논란의 초점이 되고 있는 실시 범위에 대해서는 민정당측이 개헌유보에 따른 정치적 보상을 위해서도 기초자치단체의 전면실시가 불가피하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으고 있으나 아직 시·도별 부분 시범실시, 단계적 실시론이 끈질기게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부분시범실시를 주장하는 측은 시·군·구등 2백36개 기초자치단체 3천4백명의 지방의원을 동시에 선출할경우 관련행정수요의 충당, 지방행정기구의 재편문제등 준비작업이 부족한 상태여서 부작용과 호란이 따르고 준비기간도 부족하다는 이유를 내세우고있다. 그래서 시·도별부분시범실시를 하든지, 시·군은 우선 연내 실시하되 대도시의 구는 정부교체이후 88년내에 실시하자는 주장이다.
그러나 대다수 민정당의원들은 야당측이 기초자치단체는 물론 시·도등 광역자치단체까지 전면실시와 자치단체장 직선등을 주장하고 있어 부분· 단계적 실시는 여론의 집중적인 비판을 받을 우려가 있다고 보고있다.
실시 시기에 있어서도 몇갈래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야당의 대통령선거 보이코트 방침을 의식해 어떡하든 야당을 선거에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야당도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는 지방의원선거를 선거인단선거에 앞서 실시하자는 의견이 민정당 안에는 많다. 그리고 정부이양을 목전에 두고서는 관심과 정력을 분산하기 어렵기 때문에 대통령선거후 실시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선거인단선거후 연말 또는 내년초 실시를 주장하는 근거도 만만치 않다. 어차피 야당이 대통령선거를 보이코트하는 마당에 무리해서 선거인단선거전에 실시할 경우 대통령선거에 자칫 나쁜 영향을 주고 정치일정에 혼선을 초래할수있으며 다음 대통령이 선출된 상태에서의 지방의원선거는 큰 부담이 없을 것이라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이처럼 실시 범위나 시기를 둘러싼 여권내 논의의 흐름을 보면 지자제실시를 되도록 축소지향적으로, 늦게 해보려는 움직임이 일각에 있음이 느껴지는 것이다.
지자제와 함께 큰 관심을 끌고있는 언론활성화 방안은 당초 예상보다 계속 늦어지고 있다.
현재 알려진바로는 △언론기본법은 전면 폐지가 아닌 일부 독소조항개정 △지방주재기자는 1시·도 1명 정도의 소규모 부활 △프레스카드의 문공부발행 폐지방향으로 대강이 잡혀있다.
80년12월 개혁입법의 하나로 입법회의에서 통과된 언기법중 △정기간행물의 등록및 등록취소 조항 △편집인등의 형사책임규정 △정보청구권 △취재원 보호규정등이 개정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언론자유 문제는 이같은 제도적인 장치의 문제점 보다 외부의 비공식적인 사실상의 영향력 행사가 더 큰 문제인만큼 법이나 제도의 개선만으로 언론활성화의 획기적 전환점이 이뤄질수 없다는 점에서 명백히 한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여권에서 논의되고있는 법개선의 내용도 시간이 갈수록 소극적인 인상을 주고있어 실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주목되고 있다.
시국사건과 관련된 구속자 석방은 오는 5월5일 석탄일때 단행될 것으로 보이나 그 규모나 질에 있어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즉 가석방의 대상이 되는 기결수 4백50명선중 국가보안법위반자를 빼고나면 재판중 반성의 빛이 뚜렷한 사람은 이미 집행유예를 통해 풀려난만큼 실제로 석방자수는 많을수가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한꺼번에 대규모를 풀어줄 경우 법집행의 권위·신뢰가 실추되고 서서히 재개되는 운동권 시위에 역량을 추가해준다는 점에서 1백명선 이상의 대규모 석방은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렇듯 민주화조치의 어느 사안이나 한계가 있고 정치적 고려에의해 다뤄지고 있는만큼 국민들로부터 어느 정도의 공감을 얻을지 벌써부터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같은 한계와 국민적 기대치와의 괴리를 어떻게 조화하느냐에 따라 민주발전조치의 성공여부가 달려있다고 하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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