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회장자살 계기로 본 해운업계 실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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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해운불황의 거친 파도는 급기야 국내최대 해운회사 기업주의 목숨을 삼켜버렸다.
부채규모가 1조원이나 되는 범양상선의 박건석회강이 투신자살하게된 직집적인 동기는 경영난, 경영권다툼, 인간적 배신감, 당국의 외화도피내사등이 겹친때문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어쨌든 근본원인은 역시 해운불황이다.
박회장의 투신자살을 계기로 해운산업 현황과 불황의 골짜기, 그리고 정부의 합리화 지원대책등을 알아본다.

<현황>
82년부터 불황의 늪에 빠진 해운 경기는 최근 약간씩 회복되고 있는 추세지만 아직 수지가 맞기에는 거리가 먼 상태다.
경박단소화하고 있는 산업구조변화등으로 해상물동량의 신장세가 둔화되고 있는데다 현재 세계 선복량은 2천만톤이나 남아돌아 과당경쟁이 치열한 때문이다.
해운시황을 재는 척도인 운임지수는 81년1월 4백 (72년 1백기준) 에서 86년12월에는 1백56.7로 대폭 떨어졌다.
그러나 최근 소련의 흉작에 따른 곡물 물동량증가와 선복량증가둔화로 운임지수는1백76으로 다소 회복되기는 했다.
미국동부에서 일본에 이르는 곡물운임도 86년 7∼8월 톤당 8달러에서 최근 15달러로 올랐으나 80년의 30달러에 비하면 절반수준이다.
이같은 운임단가 하락으로 화물을 많이 실어나르면서도 국내 해운회사의 운임수임은 83년 24억6천5백만달러에서 84년 23억6천6백만달러, 85년 19억9천만달러, 86년 19억6천6백만달러로 계속 줄어들었다.
이같은 불황에서 경영수지는 악화될 수밖에 없다.
해운업계는 지난81년 2백4억원의 흑자를 낸것을 마지막으로 82년 1천24억원, 83년 1천2백95억원, 84년1천5백84억원, 85년 1천8백74억원, 86년 2천3백40억원의 적자를 내 5년간 적자누계가 무려 8천1백17억원이나 됐다.
범양상선·대한선주등 합리화지정 6개사의 5년간 누적적자가 7천7백66억원으로 전체의 95.7%를 차지한다.
이같은 누적적자로 인해 해운업계의 부채는 천문학적으로 늘어났다.
86년말 현재 해운업계 총부채는 은행부채 2조9천5백87억원, 제2금융권부채 8천2백89억원등 모두 3조7천8백76억원이나 된다.
이중 범양상선등 6대해운회사 부채는 2조9천8백51억원으로 전체부채의 78.8%.
당국의 지원조치가 없다면 해운회사가 연간 지불해야하는 이자만해도 4천3백45억원 (연리11.5%기준)이나 돼 회사경영은 정지될 수밖에 없는 처지다.

<합리화대책>
이러한 사정때문에 정부는 부실 해운산업을 정상화하기 위해 84년5월12일 1차합리화대책을 수립, 통폐합을 단행했다.
해운업 면허남발로 1백11개사나 난립, 과당경쟁을 벌여온 외항업체를 20개그룹으로 대폭 줄였다.
원양·동남아항로 63개선사를 11개선사로, 한일항로 48개선사를 9개선사로 줄였다.
이와함께 해운업계가 안고 있는 1조70억원의 부채를 3년거치, 5년분할 상환조건으로 유예및 대환해주고 8백41억원을 운전자금으로 새로 지원했다. 해운업계총부채의 29%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그러나 해운경기가 되살아나기는 커녕 불황이 더욱 심화돼 통폐합당시 2조8천9백22억원이던 부채가 86년3조7천8백76억원으로 늘어나는 등 경영상태는 계속 악화됐다.
그냥 내버려두면 쓰러질것은 불을 보듯 빤하다. 그렇게되면 돈을 빌려준 은행도 쓰러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워낙 덩치가 큰 해운회사를 쓰러뜨릴수도 없어 2차 합리화조치를 단행했다.
범양상선·현대상선등 6개선사의 은행부채 1조8천7백46억원을 5∼10년거치, 10년분할 상환조건으로 상환기간을 늦춰주고 통폐합으로 인수한 부채의 이자율은 연리 10%로 낮춰주었다. 또 대한선주는 한진해운이 인수했다.
대한선주의 부채 6천5백억원중 자산가치를 넘는 것은 은행이 절반을 떠안고 나머지는 이자도 안받고 15년거치, 15년 분할상환조건으로 유예해주는 조건이다.
이밖에도 경쟁력 강화를 위해 낡은 배를 처분, 새배를 사도록 하기위해 계획조선조건개선등 많은 혜택을 부여했다.

<부실원인>
세계해운경기쇠퇴를 예측못하고 과도하게 선복량만 늘려 과당경쟁을 벌이게 한 당국의 해운정책이 부실을 심화시켰다.
정부가 해운입국을 내세우며 선복량을 늘리는데만 급급, 배값을 90%까지 지원, 선박도입을 부추기고 해운면허를 남발한 탓이다. 또 1백만톤이상 대형선사에는 각종 특혜를 준다는 선복량증가정책을 쓰는 바람에 해운회사들은 앞다투어 중고선을 도입하게 했다.
이 결과 매년 70만∼1백만톤의 중고선이 도입돼 79년 51만톤이던 선복량이 86년에는 7백29만톤으로 늘었다.
그 결과 만든지 10년이상된 비경제선이 57.8%나 돼 경쟁력약화로 채산성을 더욱 악화시켰다.
배값이 현재보다 2∼3배 비쌀때 가장 비싼 값으로 들여왔고 그위에 신형배보다 운영비는 배이상 드니 적자가 나는 것은 당연하다.
또 돈이 좀 들더라도 1차합리화조치때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세웠더라면 부실규모는 지금처럼 커지지 않았을 것이다.
세계해운경기가 되살아나지 않는한 자생할수 없는 상황인데도 이번 2차조치처럼 금융지원은 하지않았다.
그 결과 호미로 막으면 될것을 가래로 막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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