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양상선 박건석 회장 투신 자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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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국내최대의 해운회사인 범양상선 창업주 박건석 회장(59)이 19일 하오 3시50분쯤 서울 을지로1가 101 두산빌딩10층 회장실의 화장실 창문을 열고 30여m 아래 길바닥으로 투신, 그자리에서 숨졌다.
박회장은 경영권을 둘러싼 회사내분을 비관하는 내용의 유서를 회사 임직원과 가족들에게 각각 1통씩 남겼다.
박회장은 재미실업가·박동선씨의 형으로 서울대상대·미시라큐스대를 졸업했으며 작년 범양전용선을 설립한 뒤 미륭상사·범양식품·범양냉방 등 계열기업을 갖고 있다.
대기업 창업주가 자살한 것은 61년 KAL전신인 KNA사장 신용욱씨의 자살 후 처음 있는 일로 재계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범양상선은 현재 84척의 선박(선복량 2백만6천t을 보유한 국내최대규모의 해운회사로 부채가 1조2백50억원으로 밝혀졌으나 지난 2월 정부의 해운업계 지원책으로 8천4백억원의 금융지원을 받아 회생단계에 있었으며 지난달 2일에는 서해 옹진 앞바다에서 유조선이 좌초돼 보상문제와 외화도피혐의로 세무당국의 추적을 받는 등 경영에 큰 어려움을 겪어왔다.
◇투신=목격자인 손태정씨(35·빌딩경비원)에 따르면 『밖에서 「퉁」하는 소리가 나 뛰어가 보니 박회장이 건물주차장 시멘트바닥에 피투성이가 된 채 떨어져 숨져있었다 고 말했다.
박회장은 이날 아침 일찍 성북동 자택 뒷산을 산책한 뒤 상오 9시쯤 종로5가 연동교회에서 부활절예배를 본 뒤 귀가했다가 하오 1시쯤 서울 가회동 모친집에 들른 후 운전기사에게 평소와 달리 『북악스카이웨이로 드라이브나 하자』고 해 한바퀴 돌고 하오 2시50분쯤 사무실에 도착했었다.
박회장은 집무실에서 미강상사 함성용 회장을 3차례 전화통화 하려다 실패한 후 책상주변을 정리하고 투신했다.
경찰은 유서 작성시간이 19일 상오 9시45분으로 되어있는 점으로 미루어 사전에 투신자살을 계획한 것으로 보고있다.
◇유서=박회장은 가족들에게 남긴 유서에서 『나는 한상연이가 계획한 덫에 치었다. 한은 잔인하고 비정한 자라는 것을 2∼3년 전부터 알고 최선을 다하여 원활히 해나가려고 했지만 이번 조사로 끝까지 나를 괴롭히는 것을 알았다』고 썼다.
박회장은 또 유서 끝에 『어머니보다 먼저 가 미안하다. 관계당국에서도 사실을 잘 인지하시고 사실이 사실대로 선이 악에게 당하지 않도록 부탁한다』고 밝혔다.
◇가족관계=박회장은 부인 이영신씨(55)와의 사이에 외아들 박승주씨(26)와 딸은 은심(29)·은주(25)씨 등 1남2녀를 두고있다.
장녀 은심씨는 5년 전 김모씨와 결혼, 김씨는 한때 범양상선 관리담당상무로 근무했었다.
◇빈소=박회장의 유해가 안치된 백병원 영안실에는 19일 밤부터 소식을 전해들은 김우중 대우그룹회장부부, 신영수 한국일보사부회장, 허정구 삼양통상회장, 오세중 셋방여행사회장,김정렬·유재흥 전국방장관, 김재순 샘터사대표, 이은택 조선호텔사장 등 재계인사 및 친지들이 찾아와 조문했으며 20일 상오에는 김영삼 통일민주당창당위원장·백두진 전국회의장, 정일권 전국무총리·유치송 민한당총재 등이 분향했다.
미망인 이영신 여사와 사위 김씨가 문상객들을 맞았다. 발인은 21일 상오 10시 백병원영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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