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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 “박정희 위한 효도 교과서 폐기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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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교육부가 28일 국정 역사교과서(올바른 역사교과서) 현장 검토본을 공개하자 야당과 시민단체들은 “즉각 폐기해야 한다”고 반발했다. 이날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 의원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위안부 학살을 은폐하고,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의 공적을 과대포장하고 과오는 축소시켰다”며 “밀실에서 비밀리에 추진해 온 ‘박정희 기념 국정교과서’를 당장 폐기하라”고 촉구했다. 민주당과 국민의당은 국정 역사교과서 폐기를 당론으로 정하고 각각 특별위원회를 만들어 대응키로 했다. 국민의당 소속 유성엽 국회 교문위원장은 이날 “국정 역사교과서가 강행될 경우 이준식 교육부 장관의 국회 출석 금지와 해임을 추진하고, 교육부 폐지 등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야당 “강행 땐 이준식 장관 해임 추진”
보수 교총도 “수용 불가” 재확인
여당은 “권위자들 최선 다한 결과물”

국정화에 반대해 온 시민·사회단체들도 폐기를 요구했다. 485개 단체가 참여하는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는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국정 역사교과서를 ‘박근혜에 의한, 박정희를 위한 효도 교과서’라고 비판했다. 특히 ‘1948년 대한민국 수립’이라는 기술에 대해 “건국절을 사실상 못 박은 것이다. 교육부가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하며 친일 독재를 미화하는 뉴라이트의 농단에 놀아났다”고 주장했다. 보수 성향의 교원단체인 한국교총도 이날 “교육부는 그간 사실에 입각한 균형 잡힌 역사교과서라고 밝혀 왔으나 1948년 8월 15일을 대한민국 수립일로 명기하는 등 교총이 제시한 3대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수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전국 14개 시·도 교육감 역시 강행에 따른 폐해를 막기 위한 모든 조치를 강구하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은 이날 “내용에 대한 세간의 우려에 앞서 이미 진행 방식 자체가 반헌법적, 비교육적인 정당성을 잃은 정책이므로 의견수렴의 대상도 아니다. 즉각적인 중단·폐기를 선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새누리당은 국정화 입장을 고수했다. 친박계인 염동열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지난 1년간 학계의 권위자들로 구성된 집필진과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현장교육원들이 개발과정에 참여해 최선을 다한 결과물”이라며 “학생·교사·학부모 등 보다 다양한 의견수렴을 거쳐 우리 학생들이 균형 있는 역사관과 국가관을 확립해 나가는 데 토대가 될 수 있는 올바른 교과서가 완성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당 대표로서 ‘국정화 드라이브’를 주도했던 김무성 전 대표도 25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교과서와 관련해 입장이 바뀌었느냐’는 질문에 “교과서 시장을 좌파들이 다 장악해 아무리 좋은 교과서를 만들어도 뚫고 갈 수 없다. (국정 역사교과서는) 최선이 아니고 차선이지만 우선 국정으로 들어가서 다음에는 검인정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장 검토본 공개를 환영하는 단체도 있었다. 보수 성향의 학부모단체인 좋은학교바른교육학부모회는 “특정 이념으로 치우친 편향된 교과서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국민적 요구를 수용한 정부의 책임 있는 조치”라고 평가했다. 일부 단체는 찬반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조동근 바른사회시민회의 대표는 “기존 검정 교과서들이 좌편향화돼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정부가 섣부르게 서두른 감이 있다”고만 말했다.

한편 교육부가 국정교과서 내용을 공개한 ‘올바른 역사교과서’ 웹사이트( historytextbook.moe.go.kr)에는 교과서 내용이 전자책(e-Book)으로 돼 있으나 내려받기나 인쇄가 불가능하다. 고교용 한국사 교과서는 내용만 286쪽이나 돼 읽는 데 불편한 데다 의견을 제출할 때도 휴대전화 인증 절차(앱 설치)를 밟게 돼 있다. 서울 소재 한 사립고 역사교사는 “교과서를 보느라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있었더니 눈이 따갑다. 교과서 집필 과정도 불통이더니 의견 청취도 불통”이라고 꼬집었다.

정현진·박유미·안효성 기자 Jeong.hyeon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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