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시대·지방문화|지방학회 지역사회연구로 "한국" 밝힌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지난해 11월 지방사회연구회(회장 백승균·계명대·철학)가 대구에서 「지방사회현실의 실천적 인식」을 주제로 창립 1주년 기념 심포지엄을 가졌을 때 그것은 하나의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30대 소장학자들이 주도한 이 심포지엄은 지방이 더 이상 중앙학술의 수동적 수용자나 소비자적 위치에 머무르기를 거부하고 지방학문의 전국적 헤게모니 확보를 향한 의지를 보이면서 한국사회연구에 지방사회적 접근이 긴요하다는 점에 공감을 주었기 때문이다.
지방사회연구회가 발족한 것은 85년 11월. 대구지방의 사회·인문과학분야 소장학자 50여명이 모여 출범한 연구단체다. 이들은 이론으로부터 현실을 설명하기보다 구체적 현실로부터 이론을 정립해 나가야 한다는 입장에 서 있다.
한국사회의 구조적 파행성이 가장 첨예하게 표출되고 있는 곳이 지방사회이고 지방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 또한 한국사회의 구조적 특질에서 연유하기 때문에 지방사회의 연구를 통해 한국사회의 조건과 문제를 규명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지방사회연구회엔 역사학·정치학·사회학·철학·법학·경제학·문학 등 여러 학문분야의 학자들이 참가하고 있다. 배영순(영남대·한국사) 김형기(경북대·경제학) 신현식(계명대·법학) 이윤갑(계명대·한국사) 손영원(계명대·정치학) 임병훈(경북대·한국사) 김한규(계명대·경제학) 김영기(경북대·철학) 교수 등 30∼40대 학자 40여명이 회원으로, 10여명의 대학원생들이 준회원으로 있으며 회원은 약간 늘릴 계획이다.
월례발표회, 하계·동계연수회, 연 1회 심포지엄 등 지속적인 연구활동을 하면서 단행본 형식의 학회지 및 회보발간 등도 계획하고 있다.
지방사회연구회는 학문간의 공동연구를 추구하고 있다. 백승균 회장은 『경북지방의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의 실증분석을 기하되 각 분야의 개별적 성과를 구하지 않고 학문간의 유기적 연계하에서 공동연구를 추진하려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학문간의 공동연구란 그리 쉽지 않다. 연구자들의 전공영역이 다양한데다 연구자와 전공자체의 수준 차·경향성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배영순 교수는 『연구의 전문성을 살리면서도 총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올해부터 분과별 활동을 강화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경제분과는 올해 경북지방의 노동운동사와 농촌현장조사, 역사분과는 일제하에서 해방직후까지의 농민운동사, 사회분과는 국가·권력론, 문화분과는 예술론 연구에 주력할 방침이다.
신현식 교수는 『연구회는 단순한 지방사회 분석에 그치지 않고 그 발전에 관한 실천적 논의도 병행시키기로 했다』고 소개했다.
80년대 중반 대구에 지방사회연구회 같은 학회가 태동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한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다.
이윤갑 교수는 그 배경으로 먼저 인적 충원을 들고 있다. 80년대 이후 대학이 급격히 팽창하면서 젊은 교수들이 대거 지방에 진출한 점이다. 또 한가지 요인은 이러한 학술운동에 대한 대학내외의 요구다. 70년대 변혁기를 대학에서 경험한 이들 젊은 연구자들은 학문연구를 통해 현실사회에 기여하려는 욕구가 어느 세대보다 강하다.
이러한 시대적 조건은 어느 지방에나 공유하고 있다. 따라서 대구에서의 지방사회연구회와 같은 뜻과 구상을 가진 학술운동은 전국적으로 확산될 전망이다. 부산·광주·대전·청주·전주 등지에서 이미 그 대동의 기운을 보이고 있다. 【대구=이근성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