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관심의 중심엔 사람이 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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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7호 16면

이런 캐릭터가 영화에 나온다면 어떨까. 첼로 신동으로 미국 대통령들 앞에서 연주하며 자랐고 하버드대에서 인류학을 전공했다. 데뷔 50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전세계에서 연주횟수가 가장 많은 첼리스트 중 하나다. 앨범을 내면 잘 팔리고 공연을 열면 매진된다. 부모와도 친하게 지내고 스캔들이 나온 적도 없다. 아내에게 헌신적이며 두 아이를 사랑한다. 고 스티브 잡스와 버락 오바마의 친구고, 사회적으로 혜택받지 못한 계층을 적극적으로 돕는다. 베를린 필하모닉 콘서트홀부터 어린이 프로그램 ‘세서미 스트리트’까지 출연한다. 언론은 그를 “겸손하고 사려깊은 휴머니스트”라 칭한다.


이렇게 흠이라고는 잡을 수 없는 주인공이 영화 속에 등장했다면 대중은 비현실적이라며 코웃음을 쳤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지금 우리 곁에서 사랑받고 있다. 첼리스트 요요마(61ㆍ友友馬)다.


연주는 연주자의 성격을 찍어내듯 드러낸다. 요요마의 연주에는 한구석도 찌그러진 데가 없다. 꼬여있지도 않으며 밝고 선하다. 악한 면이라고는 없다. 음색도 해석도 너무 착해서, 그저 그 이유 때문에 싫어하는 사람마저 있을 정도다.


궁금했다. 요요마의 비현실적 완벽함을 만든 원동력은 무엇인가. 겉으로 보기에 매끄럽고 평온하지만 사실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동요 없는 완벽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힘이 필요하니까. 그래서 물었다. “당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열린 마음’ ‘인간적인 면’ 같은 것들은 어디에서 나왔는가.”


18일 오후 예술의전당에서 그를 만났다. 발달장애인 오케스트라 ‘온누리 사랑 체임버’와 함께 연주하는 워크숍 직후였다. 그는 이 워크숍에서도 유머와 품위를 유지했고, 발달장애인들과 소통하기 위해 땀을 뻘뻘 흘렸다.


[“혼란스러웠던 시절, 사람에 대한 관심으로 극복”]


요요마의 답은 짧았다. “혼란에서 나왔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난 아직도 혼란스럽다. 물론 예전보다는 덜 혼란스럽다(웃음). 5세, 15세, 40세에 나는 계속 혼란스러웠다. 어릴 때 너무 많은 사람이 많은 조언을 했기 때문인 것 같다. ‘이게 네가 갈 길이다’ 또는 ‘이게 진실이다’라고. 그런데 이 조언들이 서로 모순됐다. 모순이 반복되자 나는 생각했다. ‘당신들은 다 옳지 않을 수 있어요’라고.”


그는 4세 때 데뷔해 어린 아이가 만날 수 있는 가장 큰 세상을 만났다. 세계 각국의 수천 석짜리 콘서트홀, 대통령을 앞에 둔 연주 무대, 미국 전역으로 방송될 카메라 앞 등.


그러면서 혼란스러웠다고 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결론에 도달했다. “내가 왜 음악을 하는지, 그 이유를 찾는 일이 가장 어려웠다. 그런데 그렇게 혼란한 가운데서도 한 가지는 아주 확실하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내가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다는 점이었다. 사람은 무엇인가. 사람의 본성(human nature)과 그들을 둘러싼 자연(nature)의 관계는 무엇인가. 둘 다 끝없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탐구를 계속하다 결론에 도달했다. 내게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해도 세상에게는 그렇지 않다는 것. 그래서 내가 할 일은 단지 연주를 하는 게 아니라, 이 세상에 뭐가 있는지 최대한 알아내는 일이라는 점이었다.”


그가 종종 하는 말은 유명하다. “나는 첫째로 사람이고, 둘째로 음악가고, 셋째로 첼리스트”라는 것이다. 그는 언제나 사람에 대한 관심을 표현했다. 대학에서 인류학을 전공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혼란 끝에 깨달음을 얻었던 것이 49세 때쯤이었다. 그 때 내 모든 열정이 사람들에 관한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내 궁금증은 ‘사람들은 어떤 존재이며, 특정한 행동은 왜 하게 되는 건가’였다. 사람들은 위대한 일을 하면서 동시에 바보 같은 일을 한다. 바보 같아 보이는 일을 했다가 금방 위대한 일을 하기도 한다. 그 스위치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요요마는 지금도 사람들과 그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이루는 사회에서 음악가로서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 “왜 시카고에서 한 해에 600명이 총기 폭력으로 죽는가. 이런 일이 왜 일어날까. 내가 도울 길이 있으면 도와야 한다. 이런 식으로 음악가가 사회에 개입할 여지는 많다. 문화와 음악이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면 말이다. 왜 연주자가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지 의아해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 관심이 사람이라는 결론에 도달한 이상 단지 연주만 할 수는 없다.”


[“음악 아닌 사람이 세상을 바꾼다”]


그는 음악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걸까. “아니다. 음악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는 거다. 사람들이 음악 또는 정치 또는 다른 것을 이용해서 세상을 바꾸는 거다. 음악과 정치 같은 서로 다른 분야가 함께 중요한 가치를 공유하고 변화를 위해 연합한다면 우리에게는 기회가 있다.”


음악에서 시작한 요요마의 생각은 인간과 세상, 사회와 변화로 이어지며 하나의 긴 띠를 이루고 있다. 그는 최근의 정치 상황에 대한 의견도 내놨다. “상황이 좋지 않을 때 사람들은 두려워하고 마음을 닫는다. 중요한 것이 밀려날 수 있다. 지금처럼 세상에 변화가 많을 때 더 이상의 변화를 두려워하게 된다. 마음을 닫고 주위에 벽을 쌓는 것이다.”


요요마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2009년 취임식에서 연주했다. 대통령 직속 예술인문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는 “트럼프 당선인이 이민자들의 앞에 벽을 쌓자고 했지만 그 벽을 다리로 바꾸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지 않나. 이렇게 같은 가치를 공유하는 동료 연주자들과 함께 연주를 한다.”


이는 1998년 결성한 ‘실크로드 앙상블’에 대한 설명이기도 하다. 그는 요즘 연주자 동료 10여 명과 함께 독특한 모습으로 청중을 만나고 있다. 미국ㆍ영국ㆍ한국ㆍ중국ㆍ티베트ㆍ인도 등 많은 나라의 연주자들이 각자 전통 악기를 들고 한 무대에 선다. 서로 음계조차 맞추기 힘든 악기들로 각 문화권의 독특한 음악을 돌아가며 소개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들이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벽을 쌓지 않고 서로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게 그 가치다. 이런 일들이 쌓여 사람들의 마음 또한 열 수 있다고 모두가 믿는다.”


실크로드 앙상블은 2010년부터 한국 기업 효성의 지원을 받고 있다. 그는 “효성이 지원을 결정했을 때 세계 경제는 위기를 겪고 있었다. 사람들이 모두 마음을 닫고 있을 때 가치있는 행동을 한 셈이다. 실크로드 앙상블이 이루고 싶은 변화의 좋은 예”라고 말했다.


그는 마치 현재 한국의 상황을 암시하는 것 같은 말도 남겼다. “큰 문제를 앞에 둔 사람들은 가족 혹은 가장 친한 친구에게 돌아간다. 같은 것을 믿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사람들이 만나는 것이 하나의 움직임(movement)이 된다. 우리가 같은 가치를 공유한다면 지금과 같은 예측 불가능한 세계, 두려움을 일으키는 상황을 괜찮게 처리할 수 있다.”


요요마의 철학은 음악을 돌아 사람으로, 사회로 또 세계 정치로 뻗어나갔다. 그를 보며 누가 연주자는 연주만 한다고 하겠는가. 요요마의 세계는 그가 연주하는 바흐·베토벤·드보르자크에 머물러 있지 않고, 동시대 사람들로 또 그들이 모이는 곳으로 넓어지고 있다. “61세가 되니 모르는 게 정말 많다는 사실만 정확히 알겠다”는 요요마. 이 비현실적으로 완벽하고 올바른 사람이 우리와 같이 호흡하고 있다. 그 사실만으로도 아직은 괜찮은 시절인지도 모른다. ●


글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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