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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찬바람 타고 큰고니가 왔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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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도 끝자락 강진
겨울로 접어든 전남 강진만. 겨울철새 큰고니들이 갈대밭 위를 날며 평화로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겨울로 접어든 전남 강진만. 겨울철새 큰고니들이 갈대밭 위를 날며 평화로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가을과 겨울이 겹쳐지는 이 계절, 가장 극적인 풍경은 해안에 있다. 깊은 숲도 아니고 은행잎 깔린 길섶도 아니라 갯벌에서 가을은 가고 겨울이 온다. 이를테면 가을부터 누런 갈대밭 습지에 겨울철새가 떼 지어 날아드는 장면에서 우리는 계절의 순환을 목격한다.

 그 극적이고 아름다운 장면이 전남 강진만에 있다. 강진만 물가에는 유구한 세월이 내려앉아 있다. 강진의 옛 이름 탐진(耽津)에도 그 흔적이 있다. 탐진은 탐라(옛 제주도)로 가는 나루라는 뜻이다. 조선시대 탐진나루는 제주와 뭍은 잇는 창구였다. 제주도에서 싣고 온 말이 나루에 내려졌고, 귀양 가는 선비가 나루에서 제주도로 가는 돛단배에 올라탔다.

강진만에 포구가 발달한 건 이유가 있었다. 강진만은 내륙 안쪽으로 바다가 깊숙이 들어와 파도가 순했다. 대신 폭이 넓고 깊이도 있어 고깃배는 물론이고 큰 배도 드나들었다. 물이 빠지면 갯것 뛰노는 갯벌이 됐다. 그 순한 바다와 축축한 땅에서 강진 사람은 살을 찌웠다. 

 다산 정약용(1762∼1836)은 강진에서 18년 유배기를 보냈다. 1801년부터 1818년까지다. 만덕산(412m) 기슭 초당에서 다산은 500여 권의 저서를 남겼다. 책만 쓴 것이 아니었다. 강진의 산천도 노래했다.

 “남당마을 입구에 밀려오는 저녁 밀물/갯벌과 푸른 물 사이사이 포구로세/갯마을 한평생을 게구멍과 이웃이요/어부의 풍속도는 고기잡이 그것이지.”

지금 강진만에는 겨울기운이 드리워 있다. 갈대밭 너머에선 겨울철새 큰고니와 청둥오리가 떼로 울부짖고, 갯벌에선 살 찌운 갯굴이 썰물마다 등을 내민다. 이번 주 week&은 강진에서 보낸 며칠의 이야기다. 늦가을 배웅이자 겨울 마중이다. 강진만은 포근했다. 때때로 바람이 찼지만 날카롭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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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백종현 기자 jam1979@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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