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폭력(4)|"탕뛰기"질주 화물 트럭|「사고왕국」추방 위한 긴급진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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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교통폭력의 주범, 차종별 사고율 21·5%의 달리는 흉기 화물 트럭.
9일 상오 5시2O분, 서울 등촌동 648 통합 병원 입구 공항로 삼거리. 김포 쪽에서 시내로 달리던 서울 0616256호 15t 덤프트럭 (운전사 김추열·25) 이 시내쪽에서 통합 병원 쪽으로 좌회전하던 96번 시내버스 (운전사 박만수·40) 의 오른쪽 중간 부분을 들이받아 버스의 옆구리가 납작하게 들어갔다. 이 사고로 버스 승객 이석주씨 (54·회사원) 등 2명이 즉사하고 버스운전사 박씨 등 5명이 중상.
덤프 트럭 운전사 김씨는 전날 하오 10시부터 서울 저동 재개발 지구 공사장에서 나온 잡석을 외발산동 빈터에 부리고 오던 길. 한번에 1만5천원씩 받는 탕뛰기로 철야근무. 사고지점에서 일단 정지를 무시했다가 사고를 빚었다.
쌍나팔 클랙슨에 과속·난폭 운전으로 시내를 질주하는 화물 트럭. 그 중에서도 철갑 상어처럼 차도를 위압하며 골재를 실어 나르는 덤프 트럭은 탕뛰기 무법자.
「한탕에 1만5천원」-. 탕 뛰기 트럭 앞에는 차선이 따로 없으며 신호등도 따로 없고 제한속도도 따로 없다. 달리는 곳과 속도가 차선이고 시속이다. 그래서 화물 트럭이 나가면 승용차도 물러서고 버스도 겁낸다.
23일 하오 서울 천호 대교 밑 올림픽 대로. 서울06-570x호 15t짜리 붉은색 덤프 트럭이 자갈 한차를 가득 싣고 들어섰다. 잠시 컨디션을 조정하는 듯 하더니 액셀러레이터를 밟기 시작, 순식간에 시속 1백km, 1백10km….
처음에는 3차선으로 달리던 차가 잠실 대교 밑읕 지나면서 주행차가 많아지자 1차선·2차선으로 왔다 갔다하며 승용차·소형 트럭을 추월한다. 시속은 90∼1백km. 성수 대교를 건넌 소형차가 인터체인지를 통해 올림픽 대로로 진입하다가 질주하는 이 트럭의 클랙슨 소리에 놀라 찔끔, 급브레이크를 밟는다.
트럭은 불과 10분만에 한남 대교 밑에 도착, 2차선에서 도로 왼쪽에 나 있는 고속도로 진입로 쪽으로 핸들을 꺾었다. 자갈이 길바닥에 주르르 떨어진다. 용달차·봉고·승용차들이 속도를 줄이고 길을 양보한다. 트럭은 신사동∼고속버스 터미널 옆을 지나서 초동 한 아파트 공사장에 도착, 자갈을 부린다. 14km를 불과 12분만에 달렸다.
이 덤프 트럭 운전사 김태호씨 (37) 는 자신을 「탕뛰기 인생」이라며 『탕뛰기에 산다』 고 말한다. 운전경력 5년, 트럭운전 5년의 김씨가 받는 임금은 한 달에 약50만원.
우선 하루 일당이 8시간 기준 4천7백50원씩 한달에 14만2천5백원, 밥 값이 하루 5천원씩 l5만원. 여기에 4시간의 근무시간 연장 수당이 9천5백원, 합계 30만2천원이고 나머지 20만원 정도가 탕뛰기 수당. 트럭으로 한 차례 골재를 실어나르는 데(한탕)6백원씩 붙어 10탕을 하면 6천원, 12탕을 하면 7천2백원씩 받는다.
『차주가 트럭 3대를 갖고 회사에 지입해 들어가 대당 한탕에 1만5천원씩 받지만 운전사에겐 이런 식으로 품 삯을 주니 달리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습니다. 단돈 몇 천원이지만 한탕·두 탕이 운전사에겐 목줄입니다, 목줄』김씨의 말이다.
서초동 「예술의 전당」공사장에서 15t트럭으로 흙을 실어 세곡동 저지대에 부리는 홍태영씨 (29)도 하루 기본량이 10탕. 말죽거리∼개포 구획 정리 지구∼양재 인터체인지∼세곡동까지 16km를 15분, 어떤 때는 단 12분에 달리기도 한다.
한탕에 받는 돈은 1만4천원. 그러나 돈은 차주 손에 들어가고 홍씨는 월급으로 35만원과 밥값 15만원을 받는다.
홍씨는 『기본량은 10탕이지만 10탕만 해서는 차주에게 싫은 소리를 들어 최소 12탕을 뛰어줍니다. 어쩌다 몸이 불편해 9탕 정도만 뛰어도 차주가 「왜 탕수가 적으냐. 일 적게 하려면 운전대 놓아라」고 말해 결국 시속80∼90km, 때로는 1백km이상 밟게 되며 자신도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다』는 것.
성산동과 잠실에서 난지도까지 매립지 객토를 운반하는 K중기 회사 김영일씨(30)도 이름난 탕뛰기 운전사. 2명이 교대로 24시간 실어나르는데 성산동에서는 하루 20∼25탕, 잠실에서는 올림픽 대로를 통해 하루 4∼5탕 정도 뛴다.『차선 위반·앞지르기 위반에 신경 쓰다가는 월급 50만원은 고사하고 당장 쫓겨 납니다. 트럭 운전사들이 남아 도니까요. 그 뿐입니까? 실적이 좋지 않은 운전사는 다른 회사나 차주들이 써주지도 않습니다』
이 때문에 골재 트럭은 「총알 택시」못지 않게 달리고 거리의 난폭자로 질주하게 된다.뿐만 아니라 차주들은 겁없는 젊은 운전사를 좋아한다. 그래서 화물 트럭의 3분의2정도가 2O대.
그러나 차주들은 신호 위반·차선 위반·앞지르기 등 운전사 과실에 대해 냉정하게 운전사로 하여금 벌금을 물게 한다.
서울 시내에는 현재 11만6천여대의 화물차와 1천7백여대의 특수차(레미콘·유조차 등)가 있다. 이 가운데 15t 이상의 덤프 트럭이 5천여대.
그러나 덤프 트럭의 과속·난폭 운전이 다른 차보다 심하다는 것뿐이지 대부분의 화물차가 교통 폭력을 일삼기는 마찬가지다.<박의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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