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만한 배꼽…은행 가산금리 해도 너무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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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의 가산금리 상승세가 심상찮다. 하반기 들어 오름폭이 커지더니 이젠 배(기준금리)와 배꼽(가산금리)의 크기가 별 차이 없다. 대출자의 부담이 커진다는 우려가 나오자 금융감독당국이 점검에 나섰다.

21일 은행연합회의 10월 공시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1.0%에 그쳤던 4대 은행의 주담대 평균 가산금리가 지난달(공시일 기준)엔 1.46%로 뛰었다. 같은 기간 신규 주담대에 적용되는 기준금리는 평균 2.1%에서 1.49%로 떨어졌다. 기준금리와 가산금리를 합쳐서 결정되는 평균 주담대 금리는 같은 기간 연 3.11%에서 2.95%로 소폭 하락에 그쳤다. 우리은행의 경우엔 가산금리가 평균 1.7%로 뛰면서 기준금리(평균 1.47%)보다 높기도 했다.

코픽스 내려도 가산금리는 상승
은행 ‘트럼플레이션’ 이유 대지만
가계빚 억제 명분으로 배 불리기
대출자 부담 우려, 당국 점검나서

이런 흐름은 이달 들어서도 이어지고 있다. 신한은행의 21일 기준 변동금리형 주담대 금리는 10월 말보다 0.26%포인트, 국민은행은 0.16%포인트 상승했다. 기준금리인 코픽스(신규취급액 기준) 오름폭이 0.06%포인트에 그쳤음을 감안하면 가산금리가 0.1~0.2%포인트 상승했단 뜻이다.

시장금리 수준에 따라 결정되는 기준금리와 달리 가산금리는 은행이 자율적으로 결정한다. 은행연합회는 최근 “시장상황이 급변할 경우 가산금리 구성요소인 리스크 프리미엄이 상승해 대출금리 상승요인이 된다”는 설명자료를 냈다. 금융시장에서 트럼프발 인플레이션, 일명 ‘트럼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보니 가산금리를 올렸다는 해명이다.

하지만 트럼프 당선 몇 달 전부터 이미 가산금리가 상승세를 탔다는 점에서 이런 해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대신 전문가들은 하반기 들어 금융당국이 은행권에 가계부채 증가세를 억제하라고 주문한 것을 주요 요인으로 꼽는다. 임일섭 우리금융경영연구소 금융연구실장은 “은행이 전보다 대출 규모를 줄이기 위해선 가산금리를 올려서 ‘이 가격에도 대출받을 사람만 대출해 주겠다’고 수요를 조절하는 게 일반적인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은행 입장에서도 지금은 가산금리를 올려서 여유 있게 장사를 하는 게 더 좋은 상황이다. 이미 3분기에 연간 주담대 목표치를 채웠기 때문이다.

결국 은행이 금리 변동기를 틈타서 수익을 극대화하려고 가산금리를 조정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은행이 대출 가산금리는 올리면서 예금금리는 동결해서 이를 수익 기반으로 삼는다는 게 문제”라며 “금융당국도 은행이 우월적인 지위를 이용해 금리를 마음대로 올리는 것을 용인해왔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그동안 가격(대출금리)은 기업 자율사항이란 이유로 가산금리 인상에 별다른 제동을 가하지 않았다. 그러나 가뜩이나 다음달 미국 금리 인상을 앞두고 시장금리가 들썩이는 상황에서 가산금리까지 가파르게 뛰자 금융감독원이 나섰다.

금감원은 최근 각 은행에 대출금리 산정체계를 서면보고토록 했다. 은행의 영업전략 같은 특별한 요인에 따라 가산금리가 급등·급락하는 경우가 없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금감원 박상원 건전경영총괄팀장은 “가산금리는 서서히 움직여야 하는데 지나치게 들쑥날쑥한 경향이 있어서 들여다볼 예정”이라며 “어떤 이유로 가산금리를 크게 올리거나 내렸는지 근거를 은행 홈페이지에 공시케 하는 방안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가산금리 산정근거를 좀더 투명하게 공개하게 함으로써 은행이 지나친 금리 인상을 자제토록 유도한다는 뜻이다.

진웅섭 금융감독원장도 21일 주례임원회의에서 “대출금리체계 운영의 적정성을 점검해 미흡한 점을 합리적으로 개선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애란 기자 aeya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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