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서 사람까지 숨지게한 ‘H5N6형’ AI 바이러스 전국 확산 비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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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생한 충북 음성군 맹동명 용촌리 가금류 농장에 이동제한 조치가 내려졌다. 프리랜서 김성태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생한 충북 음성군 맹동명 용촌리 가금류 농장에 이동제한 조치가 내려졌다. 프리랜서 김성태

21일 오후 조류인플루엔자(AI) 확진 판정이 난 충북 음성군 맹동면 용촌리 일대에서 방역당국이 오리 2만6000여 마리를 살처분 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21일 오후 조류인플루엔자(AI) 확진 판정이 난 충북 음성군 맹동면 용촌리 일대에서 방역당국이 오리 2만6000여 마리를 살처분 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21일 전북 김제시 금구면의 한 육용 오리 농가에서도 오리 100마리가 폐사했다는 신고가 들어와 방역 당국이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AI)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역학조사에 나섰다. 전북도는 가축방역관과 초동 방역팀을 현장에 투입해 가검물을 채취해 농림축산검역본부에 정밀 검사를 의뢰했다. 또 이 농가 오리 1만7000여 마리를 예방차원에서 살처분할 방침이다.

앞서 20일엔 수도권인 경기도 양주시 산란계(알을 낳는 닭) 농장에서 고병원성 AI 의심신고가 접수돼 긴급 차단방역이 이뤄지고 있다. 지난 18일엔 전남 무안군 일로읍의 한 육용오리 농장에서도 AI 양성반응을 보여 해당 농장의 오리 2만1700여 마리를 살처분했다.

AI 바이러스 가운데 전염성이 높고 인체 감염 및 사망 사례까지 보고된 ‘H5N6형’ 바이러스가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발견돼 전국으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지난달 충남 천안에서 발생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서해안 철새 도래지를 중심으로 중부내륙 오리·닭 사육 농장에 확산하고 있는 것이다. .

H5N6형 AI 바이러스는 2014년 중국에서 발생한 후 지금까지 15명이 감염돼 9명이 숨지는 등 인체 감염 사례가 있어 방역 당국과 농가를 긴장시키고 있다. AI가 국내에서 처음 발생한 건 지난달 28일 충남 천안시 풍세면 남관리 소재 봉관천에서다. 이곳에서 채취된 야생조류 분변에서 H5N6형 고병원성 AI가 검출된 데 이어 지난 10일 전북 익산시 춘포면 만경강 수변에서 포획한 야생조류 시료에서도 같은 바이러스가 확인됐다. 이어 지난 16일 충북 음성군 맹동면 용촌리의 한 오리 농장에서 고병원성 AI가 발생했다. 지난 15일 닭 2000여 마리가 폐사한 전남 해남군 산이면의 한 산란계 농장 역시 고병원성 AI로 확인됐다. 정밀검사 결과 모두 H5N6형이었다.

충북방역대책본부는 지난 17일 음성 맹동면에 방역팀을 파견해 AI 발생 농가의 오리 2만6000여 마리를 살처분했다. 하지만 확산은 계속되고 있다. 이곳에서 약 20㎞ 떨어진 청주시 북이면의 한 농장에서도 지난 20일 오리 80마리가 폐사해 8500마리를 살처분했다. 방역 당국은 이들 농가의 오리는 물론 반경 3㎞ 이내 닭 15만 마리와 오리 16만2800마리를 21일까지 살처분했다.

박재명 충북도 동물보호팀장은 “음성 소하천과 청주 미호천 일대 소규모 철새도래지에서 야생 조류가 날아다니면서 AI에 전염 된 것으로 본다”며 “음성·진천은 가금류 농장이 밀집해 있어 방역대 예찰지역을 기존 10㎞에서 15㎞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수도권에도 이번 AI 확산에 비상이 걸렸다. 21일 경기도와 양주시에 따르면 지난 20일 백석읍 한 산란계(알을 낳는 닭) 농장에서 사육 중이던 닭 1만3392 마리 중 240 마리가 19일 오후부터 20일 오전 사이 잇따라 집단 폐사해 사육 농민이 방역 당국에 고병원성 AI 의심 신고를 했다. 방역 당국은 이 농장에서 폐사한 닭을 간이검사 결과 H5형 AI로 판정됐다고 밝혔다. 정밀검사 결과는 22일쯤 나올 예정이다. 방역당국은 해당 농장에 초동방역팀을 투입해 이동통제를 하는 등 방역 조치를 시행 중이다. 또 해당 농장의 닭 1만3392 마리 전부를 당일 예방적 살처분 조치했다. 경기도는 확산을 막기 위해 AI 의심 신고 농장으로부터 반경 3㎞ 안에 통제초소 3곳·거점 소독초소 및 사료환적장 1곳 등 초소 4곳을 긴급 설치, 차단 방역에 나섰다. 또 반경 10㎞ 안에 있는 가금류에 대한 이동을 제한하는 한편 예찰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우선 발생·방역 대상 지역 가금류 유통 금지와 발생 농장, 도축장, 전통시장 등 632개 취약 지역 점검·단속에 나섰다. 또 235개 읍·면 중점 방역관리지구 지정해 검사 및 차단과 모든 오리 농장 출하 일제 관리 등을 실시 중이다.

김용상 농림축산식품부 방역관리과장은 “국내에서 발생한 바이러스가 중국에서 보고된 인체 감염 바이러스 형인지 확인하기 위해 질병관리본부에 검사를 의뢰했다”고 말했다. 농식품부는 중국에서만 인체 감염 사례가 확인됐고, 방역 조치와 살처분 작업 등이 이뤄지고 있어 국내 인체 전염 가능성은 낮다고 밝혔다.

그러나 불안은 걷히지 않고 있다. 중국·베트남 등과 같은 상시 발생국으로 분류될 경우 수출길이 막히는 것은 물론 국민 보건에도 큰 위협이다.

해마다 가축 전염병이 발생하면서 사육 농가의 방역 의식이 희박해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농식품부는 19일부터 20일까지 ‘일시 이동중지 명령(스탠드 스틸)’을 내렸지만 위반 사례 7건이 적발됐다. 농가에서 소독을 하지 않거나 농장 주인과 사료·비료 차량이 무단으로 이동하다 점검반에 적발됐다.

농가 자진 신고의 문제도 제기된다. 가축 전염병이 발생했을 때 필요한 살처분 비용은 지방자치단체에서 부담하고 있다. 가축 질병 발생 빈도가 높은 지자체 대부분은 재정 자립도가 높지 않다. 재정 부족으로 살처분 비용을 제대로 농가에 지급하지 못하는 지자체가 생겨나자 자진 신고에 소극적인 농가가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또 고기용 닭(육계) 농장에 비해 위생 관리에 취약한 오리 농가도 문제다. 오리는 가축 특성상 감염되더라도 증상이 거의 나타나지 않거나 늦게 나타난다. 오리 농가에서 AI 증상이 발견되더라도 이미 바이러스가 번지기 시작한 지 2~4주 지난 때라 차단 방역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실제 이번에 AI로 살처분에 들어간 24개 농가 가운데 70.8%(17개)가 오리 농가다.

서상희 충남대 수의학과 교수는 “선진국처럼 분기별 또는 상시적으로 전체 조류 농가를 대상으로 철저하게 예찰을 벌이고 이후 바이러스 검출시 국비로 살처분하고 차단 방역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과 같이 이미 번지고 난 후의 ‘바이러스 따라가기식 정책’으로는 더 많은 피해를 부를 뿐”이라고 말했다.

양주·대전·세종=전익진·최종권·조현숙 기자 ijjeon@joongang.co.kr

[사진 프리랜서 김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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